21년 5월 조사개시 이후 191명 1차 진실규명 결정
"강제노역·폭행·성폭력·사망 등 인간존엄성 침해해"
"정신요양원 입소·화학적 구속 등 의료 가혹행위도"
"국가는 피해자와 유가족에 공식적으로 사과" 권고
대규모 인권침해 의혹이 제기돼 온 형제복지원과 관련해 12년간 총 657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국가기관의 조사결과가 나왔다. 부랑인, 고아라는 이유로 강제 수용된 피해자들은 임금착복·폭행·성폭력 등에 시달리며 목숨을 잃기도 했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4일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은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다"라고 밝혔다.
1960년부터 1992년까지 운영된 형제복지원은 사회 통제적 부랑인 정책 등을 근거로 공권력이 직간접적으로 개입, 부랑인으로 분류된 사람들을 형제복지원에 강제 수용해 강제노역·폭행·가혹행위·사망·실종 등을 겪게 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형제복지원에서 발생한 전반적인 피해를 국가의 독립적인 조사기구가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은 1987년 박인근 당시 형제복지원 원장을 불법감금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겼지만 대법원은 '정부훈령에 따른 부랑자 수용이었다'며 특수감금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업무상 횡령 등 일부 혐의만 유죄로 인정했다. 이후 2018년 검찰 과거사위원회와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의 비상상고를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에게 권고했다.
지난해 3월 대법원은 대검찰청의 비상상고 신청을 기각하면서 '국가가 주도한 인권유린 사건'이라고 판단했으나, 국가 책임을 일부 인정하는 데 그쳤다. 그러면서 "단순히 이 사건에서 피고인의 특수감금죄가 성립하는지 여부 만을 문제로 삼는 것은 피해자들에 대한 인권침해의 단편만을 보는 결과"라면서 "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으로 명예회복과 정부 조치를 통해 피해자 아픔이 치유돼 사회 통합 실현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진실화해위 조사로 집계된 형제복지원 입소자는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총 3만8000여명에 달한다. 아울러 사망자 수는 기존에 알려진 552명보다 105명 많은 657명으로 집계됐다. 추가적인 진실규명이 이뤄지는 만큼 사망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진실화해위가 확인한 인권침해 사례는 일일이 열거가 어려울 정도로 다양했다. 강제수용, 강제노역 및 임금 미지급, 비의료 목적의 정신요양원 입소 및 화학적 구속, 구타 및 성폭력 등이다.
형제복지원은 수용자들을 낚시 공장, 장남감 공장, 봉제 공장 등 자활 사업 명목의 노역에 동원됐다. 형제복지원은 수익금을 온전히 지급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1986년 기준 1인당 34만원 가량이 착복됐으며, 탈출해 도망간 이들의 모아둔 임금은 지급하지 않고 '기증금' 처리했다.
또한 형제복지원 내부에 마련된 정신요양원은 의료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수용자들에 대한 징벌 수단으로 활용됐다고 한다. 당시 정부는 지침을 통해, 정신요양원에 수용될 대상 1순위를 '사회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자'로 규정했는데 이를 적극 활용한 셈이다.
또 클로르프로마진과 같은 정신질환 치료제를 대량으로 구입, 화학 약품을 이용한 가혹 행위 정황이 발견되기도 했다.
입소 과정 역시 문제 투성이였다. 진실화해위가 부산지방경찰청 소속 각 경찰서에 보존된 '즉심사건부', '구류자명부' 등을 입수 분석한 결과 경범죄처벌법에 의해 구류 처분받는 등 경범죄 위반자들이 형제복지원에 강제 수용됐다.
당시 26세였던 안모씨는 '불온 유인물 소지' 혐의로 구류 5일 선고를 받았는데, 형제복지원에 강제 수용됐다. 이 외에도 '불안감 조성', '시비 소란' 등 경미한 범죄로 구류됐다가 석방된 이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형제복지원에 입소한 사실이 확인됐다.
진실화해위는 "군대식 편제로 수용자들을 통제하면서 구타, 가혹행위, 성폭력 등이 일상적으로 발생했다"며 "학령기 아동들에게 최소한의 의무교육의 기회도 제공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을 토대로 진실화해위는 "국가는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문제에 대한 진정을 묵살했고, 사실을 인지해도 조치하지 않았으며,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을 축소·왜곡해 실체적 사실관계에 따른 합당한 법적 처단이 이뤄지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이어 "국가는 형제복지원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각종 시설에서의 수용 및 운영 과정에서 피수용자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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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 박옥순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