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강제징용 정부 해법, 피해자 모욕…제2을사늑약"

피해자 지원단체 비롯한 광주·전남 시민사회 강력 반발
"법원 판결 무력화, 사법주권 포기" "반민족 매국" 혹평
"일본 과거사 담화 계승은 '식민지배 합법' 되풀이 불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한국 기업이 대신 배상하는 이른바 '제3자 병존적 채무 인수' 방식의 정부 해법안이 공식 발표되자, 광주·전남 지역시민사회가 분노했다.

피해자 지원단체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 광주·전남역사정의평화행동(22개 시민사회단체)는 6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단체들은 "정부가 '일제 강제동원 배상 문제와 관련, 일본기업 대신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수혜 기업들로부터 출연금을 모아 2018년 대법원 확정 판결로 승소한 피해자들에게 대신 지급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면서 "반민족적 매국 행위다"라고 혹평했다.

"행정부가 사법부 판결을 무력화시킨 '사법 주권 포기'이자 자국민의 외교적 보호권을 포기한 '제2을사늑약'이다"라고도 했다.

단체들은 "일본의 '한국 대법원 판결은 국제법 위반' 주장이 승리한 셈이다. 대한민국 외교의 치욕으로 기록될 것이다"라며 "정부 해법은 '1965년 한일 협정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 '한국 대법원 판결은 국제법 위반이다'는 일본의 주장을 사실상 그대로 관철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또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은 30여 년 동안 오랜 시간 사투를 벌여 쟁취한 피해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짓밟는 행위다. 피해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굴욕감만 안긴 2차 가해다"며 "판결에 따른 정당한 배상금을 놔두고, 애먼 한국 기업들이 난데없이 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대신 떠안아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강제징용으로 인권을 유린당한 피해자에게는 모욕을, 일본 전범기업에게는 완벽한 면죄부를 준 격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단체들은 "피해자들은 가해자인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으로부터 사죄 받고 정당한 배상을 받자는 것이다. 일제의 반인륜 불법행위가 아닌 오히려 피해자들의 정당한 권리가 청산됐다"고 꼬집었다.

이어 "반면 일본 피고기업은 한국 법원으로부터 배상 명령을 받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정부 해법은 가해자의 명예·권위를 회복시켜 준 꼴이다"라며 "정의가 거꾸로 뒤집어진 것이다"라고 성토했다.

아울러 일본이 약속했다는 과거사 담화 계승이 사죄가 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역대 담화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역사 왜곡은 그치지 않고 있다. 고작 기존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하는 말 한마디가 어떤 구속력을 갖느냐"며 "일본은 과거에도 식민 지배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표시한 적은 있지만 단 한 번도 '불법'을 인정한 적이 없다. '식민지배가 합법’이라는 주장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진정 '통절한 반성'을 한다면 지금이라도 사죄하고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따르면 될 일이다"고 일갈했다.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한국 전경련의 '미래청년기금'(가칭) 조성에 대해서도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이 10년 전 배상 방식으로 제안한 것이며 근본 요구와 동떨어져 이미 거부된 바 있다. 피해자를 대놓고 놀리는 것이다"라며 평가 절하했다.



이날 회견에는 미쓰비시중공업 강제 징용 피해자인 양금덕(94) 할머니도 참석, 정부 해법에 개탄하며 반대의 뜻을 표명했다.


앞서 이날 오전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2018년 대법원이 내린 확정판결 3건의 원고에게 판결금·지연이자를 지급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행정안전부 산하기관인 재단이 한·일 청구권 협정의 수혜기업으로부터 출연금을 받아 배상 확정판결 피해자 15명에게 배상한다는 것이 골자다. 배상 대상인 피해자에게 피고인 일본 전범기업이 지급해야 할 판결금은 지연이자까지 40억여 원 규모로 추산된다.

그러나 일본의 거부로 '직접 사과'는 불발됐다. 대신 일본은 식민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담은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 등을 계승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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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외전남 / 손순일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