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회계' 압박수위 높이는 정부…노정관계 '첩첩산중'

고용부, 회계공시·세액공제 연계 시행령 발표
지난해부터 '노조회계 투명화'로 갈등 깊어져
양대노총 "노조 길들이기…실효성 없다" 반발

내년부터 회계 결산을 공시하지 않는 양대노총을 비롯한 조합원 1000명 이상의 대형 노동조합은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양대노총이 대정부 투쟁을 선언한 상황에서 노정갈등은 출구를 찾지 못한 채 갈등의 골만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노동조합법 및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하고, 40일간 입법예고를 통해 내년부터 노조 회계를 공시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시행령 개정안은 노조에 직전 회계연도 결산결과를 회계 공시 시스템에 공표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조합원들의 정보 접근성을 강화하고 미가입 근로자들에게는 노조 선택권과 단결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다.

노조는 직전 회계연도 결산결과를 회계연도 종료 후 2개월 이내에 게시판 공고 등 전체 조합원이 쉽게 알 수 있게 하고, 매해 4월 30일까지 신설되는 공시 시스템에 공표할 수 있다. 새로운 회계 공시 시스템은 오는 9월까지 고용부의 노동행정 종합정보망인 '노동포털'에 구축될 예정이다.

이는 지난해부터 추진된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기조의 연장선이다.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올 1월까지 노조에 재정상황을 스스로 점검하도록 하는 자율점검기간을 부여하고, 1000명 이상 단위 노조와 연합단체 334곳에 점검 결과를 보고하라고 통보했다.

당시 고용부는 노동조합법에 규정된 장부 서류비치 의무를 스스로 확인하고 시정하라는 의미라고 했지만, 노동계는 "노조의 자주성을 해치는 명백한 월권 행위"라며 이를 거부했다. 특히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 양대노총은 이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하기도 했다.

이에 고용부는 지난 4월 끝내 회계 장부 비치 여부를 보고하지 않은 양대노총을 비롯한 52개 노조에 과태료를 부과했다. 부과 사유는 "행정관청의 보고 요구에 자료를 미제출했다"는 것이었다.

이후 실제로 비치하고 있는지 점검을 하겠다며 현장조사도 나섰으나 양대노총이 조사를 거부하면서 지난달 또다시 과태료를 부과했다. 한국노총의 경우는 회계자료 미제출을 이유로 노동단체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도 제외했다.

이처럼 정부는 회계 투명성 강화 정책을 두고 노동계와 번번이 충돌해왔다. 여기에 지난달 30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에서 망루 농성을 벌이던 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금속노련)의 김만재 위원장과 김준영 사무처장을 경찰이 강경 진압한 사건으로 노정관계는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그나마 사회적 대화에 긍정적이었던 한국노총마저 대정부 투쟁 노선으로 돌아섰는데, 갈등이 절정에 달한 상황에서 이번 정책 추진이 노정갈등의 골을 더 깊게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회계 결산 공표가 의무는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상 벌칙 조항으로서 노조 회계 공시와 '세액공제'를 연계했다. 조합원 1000명 이상의 양대노총 등 대형 노조들은 내년부터 해당 시스템에 노조 회계를 공시하지 않으면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시스템이다.

현재 정부는 해당 조항의 신설로 영향을 받는 조합원들이 214만 명가량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2021년 말 기준 1000인 이상의 대형 노조는 전체 노조의 6% 내외지만, 조합원수로 따지면 전체의 73%인 214만 명 정도가 대형 노조에 가입돼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해당 노조 또는 산하조직으로부터 조합비를 배분받는 상급단체, 산하조직 등도 함께 공시해야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영향을 받는 노조 조합원들은 더 많아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즉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노조가 회계를 공시하는 경우에도 민주노총이 공시하지 않으면 함께 세액공제 혜택이 박탈되는 구조라는 뜻이다.

이 장관은 "기부금 세액공제를 받는 조직들은 대부분 회계 투명성을 전제로 관련된 서류를 제출해야 받을 수 있었는데, 노조가 그동안 특혜를 받아왔던 것"이라며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것이니 당연히 국민들에게 알권리가 있다"고 그 정당성을 설명했다.


양대노총은 즉각 반발하며 "노조 길들이기와 탄압을 중단하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노조가 조합원을 위해 자주성을 지키면서도 민주적 운영원칙을 지켜야만 하는 규제는 이미 수십 가지 조항이 존재하는데, 이번 시행령 개정안은 이미 존재하는 규제를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1000명 이상 조합원 노동조합의 공시자료를 볼 수 있게 된다 한들, 미조직 노동자에게 노조 가입 기회가 열리지 않는다"며 "미조직 노동자가 선택권을 갖기 위해선 노조가 조합원이 아닌 동종 업종의 노동자를 위해 교섭할 수 있게 교섭 대상을 넓혀야 하고 초기업노조의 단체협약 효력이 사업장 담장을 넘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도 "정부의 시행령 개정에 반대하면 마치 노조가 회계문제가 있는 집단인 것처럼 매도해 노동개악의 포석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너무나도 드러난다"며 "노조 망신주기가 목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한국노총 출신인 이 장관을 향해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노조를 혐오하고 매도하는 데 선봉장이 된 작금의 상황이 개탄스럽다"고 맹비판했다.

그러면서 "회계 투명성이 담보되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보면 공익법인 결산서류 등의 공시 간편 서식 제출에 불과하다. 결산서 하나 제출한다고 그 단체가 투명하다고 볼 수 있는지 진심으로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노총은 현재 시행령 개정안 문구와 모법 조항의 위임 범위를 벗어난 것이 아닌지를 들여다보고, 추후 헌법소원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이 장관은 이날 브리핑 말미에 한국노총의 사회적 대화 불참 선언과 관련해 "때가 되면 책임 있는 경제주체로서 과거처럼 사회적 대화에 나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도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헌법이 노동3권을 특별하게 보장하는 이유는 책임 있는 역할을 하라는 것"이라며 "사회적 대화 시스템에서 일부 조직들이 과다 대표되고 있다는 논의들이 끊임없이 있는데, 그래서 미조직, 취약계층, 청년, 비정규직, 여성 근로자를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대화 방식의 틀을 개선해야겠다는 구상을 해왔다"고 밝혀 당분간 정부와 노조 간 강대강 대치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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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김두식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