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돈줄' 죄고, 노조는 '투쟁' 맞불…노정 갈등 재점화

내달부터 노조 회계 공시해야 세액공제 혜택 부여
노조 국고 보조금 '전면 폐지'…운영비 지원도 제동
노동계 "노조 옥죄기" 반발…11월11일 대규모 집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심화된 정부와 노동계 갈등이 하반기 들어 다시 불붙는 모양새다.

노동개혁을 추진 중인 정부가 불합리한 관행 개선을 들어 노동조합 지원을 사실상 중단하기로 한 가운데, 노동계는 "노조 옥죄기"라고 주장하며 대정부 투쟁의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어 노정 간 대립은 더욱 격화할 전망이다.



10일 정부와 노동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다음 달 1일부터 노조가 회계를 공시해야 조합비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시행할 예정이다.

당초 내년 1월1일부터 시행할 계획이었으나,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고려해 3개월 앞당기기로 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정부는 지난해 말 투명성 강화의 일환으로 노조에 회계 장부 제출을 요구했으며, 이에 응하지 않은 노조에는 과태료 부과 등에 나선 바 있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회계 공시와 세액공제 혜택을 연계하기로 한 것이다.

고용부는 "조합비 세액공제 혜택은 사실상 국민 세금으로 노조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므로 이에 상응하는 공공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며 "병원·학교 등 다른 단체와의 형평성 문제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조합원 수 1000명 이상인 노조와 산하 조직은 다음 달 1일부터 열리는 '노조 회계 공시 시스템'에 결산 결과를 공시해야 조합원이 연말정산 때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세액공제 비율은 15%이며 1000만원 초과분은 30%다.

특히 해당 노조나 산하 조직으로부터 조합비를 배분받는 상급 단체와 산별 노조도 회계를 공시해야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사실상 양대노총 등 총연맹이 공시하지 않으면 모든 노조가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노동계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노동자들의 불만을 증폭시켜 노조를 옥죄고 상급단체 탈퇴를 부추기려는 의도"라고 했다. 민주노총도 "소득공제를 볼모 삼아 '돈 가지고 장난치는' 치졸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이러한 '노조 돈줄 죄기'는 내년도 예산안에서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노조에 대한 '국고 보조금 전면 폐지'다.

정부는 그간 노동자 권익보호 등을 위해 양대노총 등 노동단체가 수행하는 각종 사업을 지원해왔다. 노조 간부 및 조합원 교육, 연구, 상담, 국제교류 사업 등이다. 올해 관련 예산은 총 44억원이다.

그러나 정부는 회계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노조에 대해 보조금 지원을 중단한 데 이어 내년부터는 양대노총 중심의 지원을 아예 없애기로 했다. 대신 비정규직 등 미조직 취약 근로자를 위한 권익보호 사업을 신설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노조가 있는 사업장의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time off) 제도와 노조 운영비 원조 현황을 전수 조사하며 사실상 노조의 위법·부당 행위를 겨냥하기도 했다.

타임오프제는 노조 전임자의 노조 활동을 근무시간으로 인정해 임금을 지급하는 제도인데, 사업장의 13%가 면제 시간과 인원 한도를 초과했다는 것이다.

또 무급 노조 전임자와 노조 사무실 직원이 회사로부터 급여를 받거나 노조 전용 차량 10여대와 현금 수억원을 지급받은 사실이 확인됐다며 노조 운영비 지원에 제동을 걸었다.


노동계는 정부의 이러한 조치들이 윤석열 정부 이후 계속된 '노조 탄압'의 연장선이라고 주장하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정부가 노조를 회계 문제가 있는 비리 집단으로 매도해 이를 노동 개악의 발판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라며 "정부 지원 중단을 무기로 노조를 길들이고 노조 혐오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노총도 "위법성이 확인되지 않은 노조에까지 불법 논란을 만들고, 현행 노조법상 허용되는 운영비 지원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등 노조 활동을 통제하겠다는 정부 속내가 명확히 드러났다"고 했다.

이에 노동계는 강력한 투쟁으로 정권의 노동 탄압에 맞서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노총은 오는 11월11일 서울 도심에서 조합원과 각계각층 20만명이 집결하는 전국노동자대회 및 민중총궐기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이달 16일에는 윤석열 정권 퇴진을 외치는 3차 범국민대회를 연다.

한국노총도 11월11일 서울 여의도 인근에서 10만명 규모의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기로 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오는 13일 기자 간담회를 갖고, 구체적인 하반기 투쟁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산별 노조를 중심으로는 곳곳에서 파업이 예고돼 있어 노정 갈등은 갈수록 첨예해질 전망이다.

당장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철도노조는 오는 14일부터 18일까지 나흘간 총파업에 돌입한다. 철도노조 파업은 2019년 11월 이후 4년 만이다.

이들은 수서행 KTX 운행, 코레일의 성실교섭 및 노사합의 이행, 시범 운영 중인 4조2교대 전면 시행 등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 건강보험공단노조, 부산지하철노조 등도 줄줄이 공동 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국토교통부 등 정부는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히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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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 김종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