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공판준비기일서 "계획된 범행 아니다" 주장
부산에서 또래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유정(23)이 첫 공판에서 우발적 범행이라는 기존 주장을 번복해 "계획된 범죄였다"고 시인했다.
부산지법 형사6부(부장판사 김태업)는 18일 오전 살인 및 사체손괴, 절도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정유정의 첫 공판 기일을 열었다.
이날 정유정은 앞선 공판준비기일과 마찬가지로 연두색 수의를 입고, 둥근 검정 안경과 흰 마스크를 착용한 채 법정에 들어섰다. 바닥을 응시하던 정유정은 검찰이 모두진술 절차를 진행하자, 검찰 쪽을 지긋이 쳐다보기도 했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 정유정 측은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다. 지난 공판준비기일에 정유정이 말한 '계획적인 범행이 아니다'라는 말은 철회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28일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 정유정은 공소사실에 대해 직접 "계획적인 범행이 아니다. 경제적인 부분에 불만을 갖진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검찰에 따르면 체포 당시 정유정은 피해자 집에는 30대 아줌마가 있었고, 자신이 아닌 그 아줌마가 피해자와 말다툼을 벌이던 중 흉기로 살해했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수사기관에 계속된 추궁에도 정유정은 피해자와 말다툼을 벌이던 중 우발적인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당시 정유정은 검찰에 "피해자가 먼저 '기초수급자냐, 공무원 시험 볼 때 장애인 전형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등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 이후 서로 욕설이 오가다 뺨을 때리는 등 몸싸움하다가 피해자의 흉기를 뺏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정유정은 피해자 집의 출입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14층에 있는 피해자 집에 바로 내리지 않고, 15층에 내려 계단으로 이동했다. 이후 정유정은 13층으로 내려가 승강기를 탑승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던 것이 수사를 통해 밝혀졌다.
또 검찰은 정유정이 과외 앱을 통해 범행 대상을 물색할 당시 영어 콤플렉스로 인해 영어 교사만 노렸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당시 정유정은 영어뿐만 아니라 국어, 수학 등 과외교사가 많은 과목들을 대상으로 범행 대상을 물색했고, 총 54명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검찰은 증거 목록 중 'DNA 감정 내용'을 들어 정유정이 피해자와 몸싸움 끝에 벌어진 우발적 살인이라는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몸싸움을 벌이게 되거나 살해 과정에서 피해자가 저항하게 되면 보통 피해자는 가해자를 붙잡기 때문에 손톱에서 가해자의 DNA가 검출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번 사건 감정 결과 피해자의 손톱에선 정유정의 DNA가 검출되지 않았다. 고로 몸싸움을 했다거나 피해자가 얼굴을 할퀴었다는 정유정의 진술은 허위 주장이다"라고 밝혔다.
이후 정유정은 수사기관에 계획범죄임을 시인하며 "피해자와 대화하며 '함께 죽을 사람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해자가 놀라 도망가자 다시 거짓말이라고 피해자를 안심시킨 뒤 범행을 저질렀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정유정은 전반적으로 수사기관에서 피해자에게 책임을 몰아가며, 회피하려는 태도를 보였다"면서 "우발적인 살인이라는 정유정의 진술은 거짓일 가능성이 높고, 공격성이 폭발한 강한 사이코패스 성향이 관측됐다. 또 정신질환인 가능성은 낮게 측정됐다"고 말했다.
더불어 정유정 측은 자신의 성장배경 등을 설명하기 위해 친할아버지를 증인으로 신청했고, 검찰은 피고인 심문을 진행키로 했다.
재판부는 정유정의 다음 공판 기일을 다음달 16일로 지정하며, 최근 잇달아 발생한 강력 범죄의 모방 범죄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했다.
재판부는 "신림동 성폭행 살인 사건이 '서면 돌려차기 사건'의 모방 범죄라는 보도가 나온 이후 마음이 굉장히 무겁다"며 "재판을 공개로 진행하는 것은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이런 일이 없어야 되겠다는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 위함이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또 "재판을 공개로 진행하는 것이 사회적인 악영향을 끼친다고 판단되면 다음 공판의 공개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해 볼 예정이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유정의 여죄를 수사한 경찰은 정유정을 살인예비 혐의를 밝혀내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에 따르면 정유정은 지난 5월 범행 수일 전 온라인 중고 거래 앱을 통해 알게 된 20대 여성 A씨를 북구의 한 산책로로 유인해 살해하려다가 행인들이 지나다니는 등의 이유로 예비에 그친 혐의를 받고 있다. 정유정은 또 같은 중고 거래 앱 채팅을 통해 B(10대)군을 유인하려고 했지만, 부자연스러운 채팅 내용에 의심을 품은 B군이 약속 장소로 나오지 않아 예비에 그친 혐의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이날 법정에서 추가 조사가 필요해 보완 수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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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남본부장 / 최갑룡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