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암매장 참극' 선감학원 유해발굴

한달간 진행…치아 210점, 유품 27점 수습
최소 85㎝ 분묘 "몸집 작은 아동 가매장해"
"생존자 지원도 부족…사회복지 연계 필요"
피해자들 "피해자 유해 조속히 발굴 해달라"

'선감학원 아동 인권 침해 사건' 유해 발굴 현장에서 손가락 길이의 막대기가 발견됐다.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수소문하자 답은 금세 돌아왔다.

"제가 밤마다 괴롭힘당할 때 저를 지켜주겠다 했던 친구가 갖고 다니던 '굴 칼'입니다."



25일 발굴 현장에 동행한 선감학원 피해자 이모(63)씨는 '막대기 사진'을 곧바로 알아봤다. 배가 고플 때면 그 친구는 바닷가에 가 그 칼로 굴을 따먹었다고 한다. 이씨는 10살이었던 1970년께 선감학원에 입소해 5년간 폭행·강제노역 등을 당했다.

이씨는 "밤마다 괴롭힘당하는 저를 보더니 '너희 부모님을 여기에 모시고 올게' '꺼내줄게'라며 밤에 섬을 나갔다. 그런데 그날 그 친구가 파도에 떠밀려 왔다"며 "내가 직접 (시체를) 묻었다. 그런데 어디에 묻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50년 만에 그 친구를 찾았다"며 오열했다.

그는 5분여 동안 굴 칼이 나온 137호 분묘 앞에 무릎을 꿇고 분묘의 바닥과 벽면을 어루만졌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이날 오전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산 37-1에서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유해발굴' 공개설명회를 열었다. 선감학원에서 맞아 죽거나 탈출하다 익사하거나 병사한 아동들이 묻힌 곳이다.

선감학원 피해 생존자 50여명도 이날 유해발굴 현장을 찾았다.

고중옥(60)씨는 13살이었던 1978년 겨울, 경기 의정부시의 한 철도길에서 친구와 놀다가 제복을 입은 사람들에 끌려왔다. 그는 선감학원 의무실에서 5년간 일했다며 "하루에도 2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의무실에 와서 약을 타갔다"며 "아이들이 워낙 많이 맞다 보니 머리를 누르면 뼈가 쑥 들어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겨울에는 손이 새까맣게 동상이 걸렸고, 평소에는 온몸에 피부병이 걸린 채 살았다"며 "모든 아이가 온몸이 간지러워서 1년 내내 몸을 벅벅 긁고 다녔다"고 떠올렸다.

현장에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선감학원 피해 생존자에 대한 복지망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경기도 선감학원 피해자지원센터 관계자는 "지금도 피해자 중에는 자살 기도를 하는 사람이 많다. 기초 생활 수급자도 60% 이상이다"며 "죽은 이들의 진상 규명뿐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복지 연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망한 피해자 유해를 조속히 발굴해달라는 요청의 목소리도 나왔다.

김영배 선감학원 아동 피해대책협의회 회장은 "이번 시굴을 계기로 국가와 지방정부가 신속히 나서서 선감학원 아동들이 묻혀있는 선감학원 일대의 전면적 유해발굴을 시급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한편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은 1946년부터 1982년까지 부랑아 갱생을 명분으로 공무원들이 조직적으로 아동·청소년들을 강제 연행 후 경기도가 운영하는 선감학원에 수용해 피해자들이 강제노역, 폭언·폭행 등 가혹행위를 당한 사건이다.

진실화해위는 지난달 21일부터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산 37-1에서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의 유해를 발굴한 결과, 분묘 40여기에서 치아 210점과 유품 27점을 수습했다.

진실화해위는 분묘 크기를 통해 아동 암매장 사실도 확인했다.

40여기의 분묘 대부분은 길이 110㎝~150㎝, 깊이 50㎝ 미만이었다. 가장 작은 92호 분묘는 길이가 85㎝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진실화해위는 "몸집이 작은 아동들을 가매장 형태로 땅에 묻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공식 기록에는 선감학원 원생 사망자는 24명으로 남아있지만, 이미 앞선 두 차례의 발굴로 분묘 45기에서 유해를 확인해 실제 사망자수는 기록을 훌쩍 뛰어넘을 것이라는 게 진실화해위의 설명이다.

원아 대장상 선감학원 입소 아동 4689명 중 834명이 고립된 섬인 선감도에서 탈출을 시도했으나, 거센 물살 등으로 인해 상당수가 익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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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본부장 / 이병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