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치유 프로그램 온 중3…"1억 넘게 날렸어요"

고1 학생은 "금액 불어나며 하루에 1200만원 잃기도"
여가부, 전북 무주에서 청소년 도박 치유 프로그램 운영
11박12일 동안 상담·음악·체육 활동 등 실시하며 치료
"도박 문제로 정신과 찾는 청소년, 요즘은 1주일 1명 꼴"

 "사이버 도박에 1억 넘게 날렸어요."

도박에 '억' 단위 돈을 날렸다고 고백한 이는 놀랍게도 이제 겨우 15살이 된 중학교 3학년 A군이다.

A군은 2년 전 친구들 권유로 바카라, 블랙잭 등 사이버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고 한다. 친구들이나 인터넷 게임으로 알게 된 형에게 돈을 빌려 도박 자금을 마련했다. 도박을 하는 친구들에게 고리로 돈을 빌려줘 자신의 도박 자금을 충당하기도 했다. 100만원을 빌려주면 이자로 50만원을 받는 식이다.



A군은 "그렇게 마련해서 사이버 도박에 입금한 돈만 2억원이 넘고, 1억원이 넘는 돈을 잃었다"고 했다.

지난 15일 전남 무주에 위치한 국립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드림마을)에서 만난 A군은 자신의 도박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그는 "다시는 도박을 하고 싶지 않다"며 "퇴소하면 내가 좋아했던 야구를 하고 싶다"고 했다

A군은 드림마을에서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청소년 도박 치유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다.


드림마을은 폐교이던 공간을 개조해 만든 청소년 수련원으로, 여성가족부가 2015년 개소했다.

여성가족부는 드림마을에서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청소년을 치유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다 지난해부터 청소년 사이버 도박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을 시작했다. 이번이 3회째다.

여가부는 15일 기자단을 드림마을에 초청해 청소년 사이버 도박의 심각한 실태에 대해 알리고, 이들이 치료를 받는 데 도움이 되는 치유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했다.

이 프로그램은 드림마을에서 상담사, 전문가 및 대학생 멘토 형들과 11박12일을 함께 지내며 사이버 도박을 치료하는 과정이다. 프로그램은 상담과 금융 교육, 음악·미술·체육 등의 활동으로 구성됐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권유로 입소한다.

하지만 입소 기간 중에는 인터넷과 TV, 휴대전화 사용, 흡연이나 음주 등이 금지되는 등 엄격한 규칙을 따라야 한다. 이런 생활에 어려움을 느끼는 학생들은 중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3회째 프로그램에 참여한 17명 가운데 5명도 일주일도 안돼 중도 탈락했다. 15일에도 다른 학생 1명이 중도 퇴소했다.

조진석 청소년매체환경보호센터 부장은 "입소한 학생들은 도박 문제 뿐 아니라 스마트폰 과의존., ADHD, 우울, 흡연, 음주 등 여러 문제가 공존하는 경우가 많다"며 "입소 후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중도 탈락하는 아이들도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드림마을 도박 치유 프로그램 입소자들 중에는 탈출을 시도하거나 과잉 행동, 자해, 자살 시도까지 발생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1학년인 B군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도박에 빠졌다. 주변 친구들이 사이버 도박을 하는 걸 보고 따라하기 시작했다. 그는 "1~2만원 정도를 베팅했는데 점차 금액이 불었다", "하루에 600만~800만원을 따기도 했는데 잃을 땐 하루에 1200만원을 잃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도박을 하기 전엔 친구들이랑 게임도 하고 놀았는데, 도박을 한 이후 모든 게 시시해졌다", "도박은 스릴 있고 재미있다. 그래서 끊기 힘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도박을 끊을 수 있을 것 같은지 묻자 "도박은 치료가 안되는 병이라고 들었다"면서도 "그래도 노력을 해 볼 것 같다. 퇴소하면 다른 것들로 스트레스를 풀 것"이라고 했다.

이날 인터뷰에 응한 아이들 4명 모두 도박을 끊고 싶어했다. 하지만 퇴소하고 나면 다시 도박을 할 것 같다고 솔직하게 밝히기도 했다.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은 퇴소 후에도 지역 상담센터를 통해 상담을 받는다. 단기간의 치유 프로그램 참가로 도박을 끊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드림센터에서 현재 아이들에게 적용하고 있는 청소년 도박 치유 프로그램은 이해국 가톨릭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개발했다.

이 교수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청소년 도박 중독 실태 및 원인과 해결방법 등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온라인 도박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졌다"며 "과거에는 도박 문제로 정신과를 찾는 청소년은 한 달에 한 명이 있을까 말까 했다면, 요즘은 1주일에 1명 꼴"이라고 밝혔다.

또 청소년이 도박에 빠지는 배경에 대해 ▲극심한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 ▲인터넷 미디어에 대한 높은 접근성 ▲황금만능주의적 사회적 분위기 등을 꼽았다.

그는 자녀나 학생이 사이버 도박을 하는 것을 발견하면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요즘 도박을 처음 경험하는 나이가 11.5세로 확인됐다. 어린 나이에 시작할 수록 중독되기 쉽다"며 "아이가 조금이라도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서 사행성이나 도박과 유사한 행위를 한다면 무조건 전문가 상담을 시작하라"고 당부했다.

또 치유 프로그램 이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아이들은 이 프로그램 후 각 지역 상담지원센터에 연결돼 관리감독을 받지만 이것 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료기관, 상담기관, 체육시설 등 아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이나 선진국에서는 아이들이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음악이나 미술, 체육 등 다양한 활동을 저렴한 비용에 이용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공교육에서 이런 것들 제공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부모가 맞벌이를 해 아이들에 대한 관리·감독이 부족한 상황에서 방과 후 할 일이 없는 아이들이 미디어에 노출되면서 사이버 도박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아이들에게는 도박이 스릴 있고 재미있는 게임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이걸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기 쉽지 않다"며 "정부가 나서서 온라인 미디어 도박 콘텐츠를 기술적으로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가적 차원의 지원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편 경찰청이 올해 9월25일부터 11월10일까지 청소년 대상 사이버도박 특별단속으로 검거한 353명에는 청소년 39명이 포함됐다. 청소년들이 도박에 유인되는 경로는 친구·지인이 알려준 경우(67.6%)가 대부분이었고, 주로 하는 도박 유형은 바카라 등 불법 카지노(62.2%)가 가장 많았다. 도박에 사용하는 평균 금액은 약 125만원, 최고액은 3227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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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 김종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