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반환 안하고 점유권 편취…대법 "사기죄는 아냐"

1~2심 유죄…대법서 파기환송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고 세입자의 주거지 점유권을 편취했다고 해도 사기죄에서 정의하는 재산상 이익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지난달 12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사기, 유사수신 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고 10일 밝혔다.

A씨는 피해자 B씨와 본인 소유의 서울 영등포구 오피스텔에 대한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전세 보증금은 1억2000만원이었고, 계약기간은 2년이었다.

이후 A씨와 B씨는 계약 기간 2년 연장에 합의한 뒤 2020년 8월 계약해지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B씨는 2020년 9월 오전 오피스텔에서 짐을 모두 뺀 뒤 보증금 반환을 요구했다.

A씨는 '1일 이체 한도가 5000만원이어서 오늘 5000만원을 송금한 뒤 나머지 7000만원은 은행에 가서 송금하겠다. 대신 다른 계약자가 오늘 들어오기로 했으니 오피스텔 비밀번호를 공인중개사에게 알려주라'고 거짓말을 했다. 이후 B씨는 잔금을 받지 못한 채 오피스텔 비밀번호를 알려줬고, 새로운 임차인이 해당 오피스텔로 이사를 했다.

검찰은 A씨가 보증금을 제대로 반환할 의사나 능력이 없음에도 B씨를 기망해 B씨가 거주하던 오피스텔 점유권을 편취했다며 사기죄를 적용했다.

이 외 A씨는 약 30명에 달하는 피해자에게 32억원에 달하는 돈을 빌린 후 갚지 않아 특정 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사기,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과 2심에서는 A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만약 피해자 B씨가 자신의 보증금 전액을 반환받을 수 없는 상황임을 알았다면 동시이행항변권을 행사해 A씨에게 오피스텔의 점유권을 이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인다"며 "따라서 A씨의 위와 같은 행위는 사기죄의 기망행위에 해당하고, 피고인의 편취 범의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대법원은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고 오피스텔 점유권을 편취한 A씨 행위의 경우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2012년 '재물에 대한 사용·수익권은 형법상 사기죄에서 보호하는 재산상의 이익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판례에 따라 "피해자 B씨가 추후 보증금을 반환하겠다는 말에 속아 보증금을 받지 않고 오피스텔의 점유권을 A씨에게 이전했더라도 사기죄에서 말하는 '재산상의 이익 처분'이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B씨가 돌려받지 못한 잔액 5000만원이 아닌, A씨 소유 오피스텔에 대한 '점유권' 자체를 두고 다툰 이 사건에서 B씨가 잃은 점유권을 사기죄의 구성 요건인 '재산상 손해'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원심은 A씨가 피해자 B씨의 오피스텔에 대한 점유권을 편취했다는 사기 부분을 유죄로 인정했다"며 "원심 판단에는 사기죄의 성립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심판결 중 피해자 B씨에 대한 사기 부분은 파기돼야 한다. 그런데 위 파기 부분은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나머지 부분과 경합범 관계에 있어 하나의 형이 선고됐으므로, 결국 원심판결은 전부 파기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KG뉴스코리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법원.검찰 / 김 훈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