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취임 후 첫 '영수회담' 결단…이재명 10여 차례 요청만에 화답

이 대표, 쉬지 않고 영수회담 제의
대통령실 "국회 상황 등 고려해야"
이재명 "영수회담을 애걸해야 하나"
총선 후 대통령실…"국민 위해 뭐든"

윤석열 대통령은 19일 오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통화를 하고 내주 용산 대통령실에서 만나자고 제안했다.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취임 후 약 10번의 영수회담을 제안했는데 1년 11개월 만에 대통령의 응답이 온 것이다.

취임 후 2년 가깝게 "대통령은 당의 총재가 아니니 영수(領袖)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 "국회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던 윤 대통령은 4·10 총선에서 집권여당의 참패 이후 결국 먼저 손을 내밀게 됐다.

◆이 대표, 쉬지 않고 영수회담 제의…대통령실 "제반 여건 고려"

이 대표가 윤 대통령에 최초로 만남을 제안한 건 취임 직후인 2022년 8월30일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이 대표와 통화를 하면서 "당이 안정되면 가까운 시일 내에 여야 당 대표님들과 좋은 자리를 만들어 모시겠다"고 말했다고 대통령실은 발표했다.

대통령실은 당시 영수회담(領袖會談)이라는 표현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대통령은 '당의 총재'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표현은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 대표는 2022년 9월 추석을 앞두고 페이스북을 통해 또 한 차례 영수회담을 요청했다.

그는 "대통령께 다시 요청드린다. 민생과 경제 회복을 위해 언제든 초당적 협력을 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실의 답변은 "여야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같은 해 10월1일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국군의날 74주년 행사에서 처음 마주했다. 대통령 선거 후 첫 만남이었다. 두 사람은 짧은 악수를 나눴을 뿐 대화는 없었다.

해가 바뀐 2023년 1월2일, 이번에는 이 대표가 윤 대통령의 신년인사회 참석에 불응하며 두 사람의 만남은 또 미뤄졌다.

국민의힘은 이날 논평을 통해 "여야 공히 똑같이 참석 요청 과정을 진행했음에도 특별 대우를 바라며 불참 핑계마저 대통령실로 돌리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2023년 1월12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이 대표는 또 윤 대통령에 회담을 제안한다.

그는 "저는 이미 여러 차례 대통령과의 회담을 제안했다. 그 제안은 지금도 유효하다"며 "일방통행 국정을 중단하고 실종된 정치의 복원에 협력해 줄 것을 거듭 촉구한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야당 대표와의 회동에) 언제나 열려있다는 말씀을 먼저 드린다"면서도 "다만 최소한의 국회 상황 등 제반 여건을 고려해야 한다"며 사실상 거절했다.


◆이재명 "민생 영수회담" "원내대표라도"…대통령실 묵묵부답

대통령실은 2023년 5월 초 이 대표가 아닌 박광온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에 윤 대통령과의 만남을 제안한다.

윤 대통령의 방미 성과를 공유하고 싶다며 여야 원내대표와 윤 대통령의 회동을 제안한 것이다.

이 대표가 "(대통령이) 대표를 만나는 것이 여러 사정으로 어렵다면 원내대표와 만나는 것도 괘념치 않겠다"고 말하며 물꼬가 터지는 줄 알았으나 이 역시 무산됐다.

박 원내대표가 "야당 대표를 먼저 만나는 것이 순리"라고 거절 의사를 밝히면서다. 사실상 '이재명 패싱'을 용납하지 못한 민주당의 뜻이었다.

여러 차례의 회동 제안을 거절 당한 이 대표 역시 불쾌한 심경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작년 8월 당대표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영수회담을 애걸하는 것도 아니고 한두 번 이야기한 것도 아닌데, 또 (제안을) 한다고 해서 할 것 같지도 않다"며 "다시 제안하거나 이러진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 달 뒤인 같은 해 9월 이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윤 대통령에게 민생영수회담을 제안한다"며 자신의 말을 번복했다.

그는 "최소한 12월 정기국회 때까지 정쟁을 멈추고 민생 해결에 몰두하자"고 밝혔다.

대통령실의 반응은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 "상황을 지켜보자"는 것이었다. 대신 국민의힘이 나서 "지금은 떼쓰기식 영수회담보다 여야 대표회담을 통해 민생에 대해 치열히 논의할 적기"라며 손을 썼다.

2023년 10월에는 민주당 차원에서 '대통령·여당 대표·야당 대표'가 함께하는 여야정 3자 회동을 제안했다.

윤 대통령의 사우디아라비아 국빈 방문 중 이뤄진 이 제안에 대통령실은 "지금은 국익을 위해 외교에 집중할 시점"이라고 거절했다.


◆4·10 총선 후 달라진 대통령실…"국민을 위해 뭐든 한다"

작년 10월 이후 제22대 국회의원선거를 위한 공천과 선거 운동 등이 본격화하며 이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도 중단됐다.

그리고 4·10 총선 이틀 뒤인 지난 12일 이 대표는 윤 대통령과의 영수회담 가능성을 묻는 취재진에 "당연히 만나고 대화해야 한다"며 "윤 대통령도 야당의 협조와 협력이 당연히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달라진 건 대통령실이었다.

대통령실 고위급 관계자는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취재진과 만나 영수회담과 관련된 질문을 받고 "'국민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겠다, 못할 게 뭐 있냐'는 말 안에 다 포함됐다"고 밝혔다.

다만 시점에 대해서는 "(현재) 여당 지도 체제가 갖춰진 게 아닌 것 같아서 여당·야당을 위해서 최소한의 물리적인 시간 필요하다"며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으로 예고했다.

그랬던 대통령실은 사흘 만에 상당히 전향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1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예고 없이 브리핑을 열고 윤 대통령이 이 대표와의 만남을 제안했다고 발표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약 5분간 이 대표와 통화를 하며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에서 만나자"고 했다. 이 대표는 초청에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대통령께서 마음을 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화답했다고 이 수석은 전했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만남은 윤 대통령의 취임 2주년을 앞두고 가까스로 성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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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김두식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