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중 광주·장흥·화순 양민학살 유족 손배 승소

한국전쟁 당시 광주·전남 일대에서 발생한 군·경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숨진 희생자의 유족들이 잇따라 국가 상대 손해배상소송에서 승소했다.



광주지법 제14민사부(재판장 나경 부장판사)는 광주 군·경 민간인 학살 희생자 3명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고 4일 밝혔다.

재판부는 국가가 소송 원고로 참여한 33명에 대해 상속분에 따라 각기 위자료와 그에 따른 지연손해금 173만여 원~1억7644만여 원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한국전쟁 중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직후인 1950년 10월 경찰부대가 광주 도심에 진입·수복했으나 치안이 불안하자 당시 국군 11사단 20연대는 전남 화순·장성·담양·곡성 등지에서 공비 토벌 작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당시 광주시 광산군 본량면 복만마을(현 광주 광산구) 등지에 살던 주민들이 군·경에 집단 학살을 당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원회)는 지난해 7월 당시 상황을 경험했거나 목격한 참고인 진술 등을 토대로, 이번 소송을 낸 희생자 3명을 비롯한 24명을 군·경 민간인 희생 사건의 희생자로 확인한다는 진상 규명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광주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의 희생자와 그 유족은 국가의 불법 행위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이고 유족은 사건 이후에도 상당 기간 사회적 편견의 대상이 돼 불이익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오랜 기간 진실 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점, 국가의 불법 행위 내용·정도와 중대성, 유사 국가 배상 판결에서 인정된 위자료 금액과의 형평성 등을 종합하고 상속에 따른 손해배상 채권을 계산해 각기 위자료를 정했다"고 판시했다.

광주지법 제14민사부는 장흥 민간인 학살 희생자 9명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이 판결에 따라 원고로 참여한 유족 35명은 상속 분에 따른 위자료를 각기 333만여 원~1억6750만여 원을 지급받는다.

국군 20연대는 1948년 11월부터 전남 장흥군 유치산에 숨어든 여순사건 주도 세력에 대한 진압 작전을 벌였다.

1950년 10월에야 장흥 일대를 수복한 경찰은 공산세력 점령기 부역 혐의자 색출 작전을 펼치면서 장흥 대덕면 일대 주민들을 집단 살해했다.

과거사위원회는 지난해 7월 당시 상황을 목격 또는 경험한 이들의 증언과 군경 자료, 국회 양민학살보고서 등을 토대로 '장흥 민간인 군·경 학살 사건'의 희생자 34명에 대해 진상 규명 결정을 했다.

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벼를 베러 논에 나간 주민들이 총에 맞았다' '경찰 지시로 당시 국민학교에 갔다가 총소리 직후 숨진 한 주민은 아내에 의해 수습됐다' '경찰에 감금됐던 주민들이 사살됐다는 소문이 나서 저수지에 가보니 사체가 있었다' 등의 참고인 진술이 나왔다.

재판부는 위원회 조사 중 나온 참고인 진술 내용이 대부분 일관되고 구체적이며 위원회의 진실 규명 결정 등에 비춰 모순되는 부분이 없어 상당 부분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국가 공무원들의 불법 행위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할 의무를 위반한 행위일 뿐만 아니라 헌법상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생명권·적법절차에 따라 재판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다. 국가는 소속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인해 이 사건 희생자들과 그 유족인 원고들에게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또 광주지법 민사11단독 한종환 부장판사는 화순 민간인 학살 사건 희생자 유족 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재판장은 화순 군·경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부모를 잃은 유족 3명에게 각기 위자료로 6800만원에서 1억7200만원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원고들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에서 1951년 2월 사이 전남 화순군 이서면과 너릿재 일대에서 경찰에 의해 희생당했다.

과거사위원회는 당시 상황을 목격한 참고인 진술 등으로 미뤄 지난 2022년 6월 진실규명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재판장은 "경찰이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살해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했다. 유족들이 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은 경험칙상 명백하다"며 "유족들이 정부의 불법 행위로 받았을 정신적 고통이 상당했을 것으로 보이고 오랜 기간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해 위자료를 정한다"고 판시했다.

최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한국전쟁 전후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을 잇따라 진실 규명 결정하면서 이를 근거로 희생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정신적 손해배상 소송에서 줄줄이 승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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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 김금준 대기자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