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 후 극단 선택…대법 "정신질환 진단 없어도 보험금 지급 가능"

1심 원고 승소…2심 의학적 소견 없다며 패소 판결
대법 "사망 전 주요우울장애 발병 가능성 살펴야"

극단적 선택을 한 보험가입자에 대한 구체적인 의료 기록이 남아 있지 않더라도 전후 사정에서 드러난 심신 상태를 살펴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지난달 9일 A씨가 보험사를 상대로 제기한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소송을 제기한 A씨는 B씨의 배우자다. B씨는 회사에 야근을 마치고 돌아와 자신의 집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A씨는 B씨의 사망 이후 보험사에 사망보험금을 청구했으나 거절당했다. 보험사들은 'B씨가 심실상실에 따른 자유로운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다.

통상적으로 사망보험의 경우 보험계약 약관에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에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피보험자가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에는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A씨는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같은 사유로 거절당하자 보험사를 상대로 보험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B씨가 비록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과중한 업무, 육아문제 등 극도의 스트레스가 지속적으로 누적된 상태에서 극도의 심리적 불안 상태를 이기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정신적 공황상태를 일으켜 자살에 이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근로복지공단이 B씨의 사망을 업무상 재해 판정을 내렸다는 점도 제시했다.

1심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보험사에게 총 1억89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망인이 평소 건강했고, 정신질병에 대한 진료 이력이 없었던 사실이 인정되기는 하나 신체적·정신적 심리상황, 주위 상황, 자살 무렵의 행태, 자살의 동기, 그 경위와 방법 등을 종합하면 망인이 자살 당시 순간적이나마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2심은 B씨가 정신질환이나 심신상실 등의 상태를 보였다는 기록이나 의학적인 소견이 없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2심 재판부는 "여러 사정들이나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망인이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거나 그러한 정신질환의 상태가 사망 직전에 극도로 악화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망인의 사망은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로서 이 사건 각 보험계약에서 정한 면책사유에 해당해 보험금 청구는 이유가 없다"고 했다.

대법원은 B씨가 사망에 이르기 전 상황을 살펴보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을 여지가 있는데, 이를 심리하지 않았다며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B씨가 사망하기 전의 상태를 알 수 있는 객관적 자료, 유족 등 주변인의 진술 등을 비롯한 모든 사정을 토대로 주요우울장애 발병가능성 및 그로 인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에 이른 것인지 여부 등을 심리했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그럼에도 원심은 B씨가 생전에 정신질환 진단 또는 진료를 받은 적이 없고, 사망 직전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이 있었던 것으로 평가하는 의사의 진단서나 소견서 등이 없다는 사정만을 근거로 판단했다"며 "원심의 판단에는 보험계약 약관의 면책 예외사유 해석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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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검찰 / 김 훈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