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동성부부 피부양자격 인정…"헌법 평등원칙 위반"

사실혼 관계 동성 배우자 건보 피부양자 소송
1심은 청구 기각…2심은 공단 처분 부당 판결
대법, 상고기각…"헌법상 평등원칙 위배해 위법"

사실혼 관계에 있는 동성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18일 오후 2시 전원합의체를 열고 소성욱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재판관 다수 의견으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동성 부부 소씨와 김용민씨는 법적인 혼인 관계를 인정받지 못했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피부양자 자격 취득이 가능하다는 회신을 받고 취득 신고를 해 2020년 2월 피부양자 자격을 취득했다.

다만 공단은 같은 해 10월 피부양자 인정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입기록을 삭제했다. 김씨와 소씨가 적법한 통지가 없었다고 문제를 제기하자 '피부양자 인정요건 미충족'으로 접수된 서류를 반송한다는 공문을 보냈고, 직장가입자의 배우자 자격 인정을 무효화했다.

이에 소씨 등은 자신들이 주관적인 혼인 의사와 객관적인 혼인 실체를 모두 충족하고 있다며 동성 부부라는 이유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위법하다며 이번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는 소씨의 청구를 기각했지만, 2심에서는 공단의 보험료 부과 처분이 잘못됐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소씨의 승소로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소씨와 김씨의 관계를 현행법상 사실혼으로 해석할 수 없다고 봤지만, 사실혼 배우자에게 건보 혜택을 인정해왔던 공단의 업무관행, 동성결합·사실혼 관계의 실질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할 때 공단의 처분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9명의 재판관 다수 의견으로 원심 판결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했다. 공단 측이 피부양자 자격을 무효화한 처분이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는 판단에서다.

대법원은 "피고는 이 사건 처분을 통해 사실상 혼인관계 있는 사람 집단에 대해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면서도, 동성 동반자 집단에 대해서는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두 집단을 달리 취급하고 있고, 이러한 취급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을 차별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피고가 직장가입자와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 즉 이성동반자와 달리 동성 동반자인 원고를 피부양자로 인정하지 않고 이 사건 처분을 한 것은 합리적 이유 없이 원고에게 불이익을 줘 그를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과 차별하는 것으로 헌법상 평등원칙을 위반해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동성 동반자를 직장가입자와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제하는 것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이라며 "이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법 앞에 평등할 권리를 침해하는 차별행위이고, 그 침해의 정도도 중하다"고 전했다.

대법원은 이날 판결이 동성 부부에게 혼인관계와 동일한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건 아니라고 밝히면서도, 사회보장제도에서 혼인관계에 준하는 법적인 권리를 부여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피부양자제도의 본질에 입각하면 동성 동반자를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과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며 "동성 동반자에 대해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에 준해 건강보험의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문제와 민법 내지 가족법상 '배우자'의 범위를 해석·확정하는 문제는 충분히 다른 국면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이동원·노태악·오석준·권영준 대법관은 "국민건강보험법에서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배우자는 이성 간의 결합을 본질로 하는 혼인을 전제로 하는데, 동성 간의 결합에는 혼인 관계의 실질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동성 동반자를 피부양자로 인정하지 않은 것을 두고 합리적 근거 없는 자의적 차별이라고 볼 수 없다"는 반대 의견을 남겼다.

대법원 관계자는 "행정청에게 차별처우의 위법성이 보다 폭넓게 인정될 수 있다는 기존 법리를 확인했다"며 "그동안 피부양자로 인정될 수 없었던 동성 간 결합관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법 앞에 평등할 권리 등 헌법상 기본권을 보다 충실하게 보장할 수 있게 되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사회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나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 대법관들 모두가 참여해 선고한다. 대법원장이 재판장이 되고 대법관 3분의 2 이상으로 구성된다.

한편, 이날 판결 선고 직후 소씨는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와 제 남편의 관계가 공적으로 인정된 결과를 여러분과 공유하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소씨는 "부부로서 가족으로서 가질 수 있는 수많은 것들 중 하나를 얻어낸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이 다음은 평등하게 혼인제도를 이용하면서 배우자로서 모든 권리를 가지는 것이 그 다음 순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씨를 대리했던 장서연 변호사는 "동성 부부도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받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정부와 국회가 나서 대법원 취지 살려 제도적 차별 철폐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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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검찰 / 김 훈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