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층 이상 스프링클러 의무화, 불과 7년 전…이전 건축물들 '무방비'

스프링클러, 화재 초기 진압에 '절대적 위력'
2018년 이전 건축 건물은 설치 의무 없어
"비용 부담 때문에 건물 리모델링 꺼려해"
"건물주에 소방 안전관리 책임 강화해야"

6층 이상 건물에 대한 스프링클러 설치가 7년 전에 의무화됐지만, 과거 지어진 건물에는 소급 적용할 수 없어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5일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 22일 발생한 부천 호텔 화재 당시 발화 지점인 8층 객실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돼있지 않았다.



스프링클러는 화재가 발생했을 때 배관시설에 가압된 소화수를 사방에 뿌려 진화하는 시설로, 주로 건물 천장이나 벽에 설치된다.

화재에 의한 열로 스프링클러헤드가 개방되면 물이 자동으로 방수되는데, 방수된 물이 불길을 조기에 차단해 큰 불로 확산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스프링클러로 불을 완전히 진압할 순 없지만, 소방대가 현장에 도착하기 전 화재를 초기 진화하는 데에는 효과가 뛰어난 것이다.

실제로 소방 당국이 추산한 스프링클러의 화재 진화 효과는 상당하다.

경기소방재난본부는 지난 2017~2021년까지 스프링클러 작동으로 943건의 화재가 초기 진압됐고, 9조6000억원의 재산 피해를 절감할 수 있었다고 추산했다.

불이 나도 건물에 설치된 스프링클러가 작동한 덕분에 5년 간 900건이 넘는 화재가 대형 피해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스프링클러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지난 2018년부터 지상 6층 이상 건물은 모든 층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규제가 강화됐다. 그러나 이는 신축 건물에만 적용돼, 2018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은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없다.

기존 건물들에까지 스프링클러 설치를 강제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이 고려된 것으로 전해진다.

스프링클러 작동을 위해서는 물을 끌어올 수 있는 배관을 천장에다 깔아야 하는데,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만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스프링클러 설치를 위해서는 건물 전체의 리모델링이 필요해 건물 소유주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대신 정부는 의료기관과 같은 사회복지시설에 대해서는 구축 건물이라도 건물주가 스프링클러를 반드시 설치하도록 지난 2019년 관련 법을 개정했고, 법 시행 전까지 설치 비용 일부를 지원해오고 있다.

그 밖에 숙박시설처럼 민간인이 운영하는 일반 시설에 대해서는 스프링클러 설치를 강제하거나 지원할 법적 근거가 없다.


이 같은 '사각지대'가 화재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부천 화재의 경우에도 불이 난 호텔 건물은 2004년에 준공된 건물로,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대상이 아니다.

이번 화재로 7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부상 당하는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지만, 건물주에 스프링클러 미설치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스프링클러처럼 기본 소방설비만 제대로 설치·작동하더라도 대규모 화재 피해는 막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1일 인천 청라동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의 경우에도, 스프링클러가 설치돼있긴 했으나 아파트 관리소 직원이 버튼을 끄는 바람에 초기 진화에 실패해 피해가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기환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스프링클러 설비를 설치하면, 일정 온도에 도달했을 때 스프링클러헤드가 자동으로 열리면서 물을 뿌리기 때문에 초기에 화재를 진압하는 데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초기 투자비용이 큰 것이 사실이지만, 스프링클러를 설치할 경우 비용 대비 편익이 훨씬 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소방방재학회에 실린 '스프링클러 설비투자의 경제적 효용성 분석에 관한 연구(김용달·최영화·윤명오)'를 보면, 스프링클러를 설치할 경우 초기 투자비용 회수기간은 건축물 내구연한의 약 20분의1 수준이며 효용성도 비용의 2배 이상으로 나타났다.

스프링클러처럼 기본적인 소방 설비가 설치돼있지 않은 건물에 대해서는 건물 소유주나 관리인에 안전관리 책임을 더욱 강하게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시설 설치를 강제할 수 없다면 '차선책으로' 건물 소유주나 관리인에 대한 화재 예방을 위한 건물 관리·점검 의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현행 화재예방법(화재 예방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은 소방시설을 갖춰야 하는 건물(특정소방대상물) 관계인과 소방안전관리자에게 소방 안전 관리업무를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실시해야 하는 사항도 각 호에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건물에 설치된 전기 설비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거나 화재 유발 요인들을 진단해 사전에 제거하는 등 화재 예방과 관련한 적극적인 조치를 요구하고 있진 않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현행 법은 소방안전관리자를 선임해서 화재 대피, 인명 구조 등을 수행하도록 하는 등 관리자의 역할이 제도적으로는 명시돼있다"며 "그러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화재 예방 업무 수행을 적절히 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KG뉴스코리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부 / 박옥순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