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압 재러 갔는데 스킨십"…서울 의사·간호사 10명 중 1명 '성희롱 피해'

환자, 상급자, 환자 보호자 등으로부터 피해 경험
피해 입어도 신고 안해…"별 조치 없을 것 같아서"
병원 내 성범죄 예방하려면 "가해자 처벌 확실히"

"회식 자리에서 돌발적으로 약간 터치한다든지, 주로 나이가 든 상급자거나 급수가 높은 직원들이 어린 친구들에게 (성희롱)하는 경우가 있어요."

"친구가 실습 중 1인실 환자의 혈압을 재러 갔는데, 갑자기 스킨십했다고 하더라고요."



서울 의사·간호사 10명 중 1명이 최근 1년 간 병원 내에서 이러한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서울시의회가 외부 용역을 통해 실시한 '의료인 성인지감수성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1년 간 병원 내에서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는 의료인은 300명 중 34명(11.3%)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7월 서울시 산하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의사, 간호사 등 총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다.

피해를 경험한 의료인의 76.5%는 환자로부터 성희롱·성폭력을 경험했고, 이어 상급자(20.6%), 환자 보호자(17.6%) 등의 순으로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 기준으로는 남성은 7.1%, 여성은 12%가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 연령대별로는 30대가 15%로 20대 이하(9.8%), 40대(9.5%), 50대 이상(9.1%)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을 보였다.

병원 내에서 동료나 상·하급자에게 피해를 입은 경우, '음담패설이나 성적 농담으로 불쾌감을 주는 행위(37.%)'를 가장 많이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나 환자 보호자로부터 피해를 입은 경우에도 응답자의 60.7%가 같은 피해를 경험했다.


그러나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겪은 뒤 누군가에게 알리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그냥 '참고 넘어갔다'는 응답자가 64.7%로 가장 많았고, 병원 내 고충처리창구 등에 신고한 비율은 2.9%로 극히 적었다. 경찰에 신고했다는 응답자는 아예 없었다.

신고하지 않은 이유로는 '병원·기관에서 아무런 조치도 취할 것 같지 않아서'라는 응답이 42.4%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다음으로 '신고할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돼서(36.4%)', '신고 절차와 조사 과정이 복잡하고 두려워서(27.3%)', '가해자로부터 보복당할까 두려워서(21.2%)', '업무 평가, 승진, 연봉 등에서 불이익을 당할까 봐(18.2%)' 등으로 조사됐다.

의사 5명, 간호사 5명 등 1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성조사' 결과 병원의 위계적이고 닫힌 구조 때문에 행위자들이 문제로 비화하진 않을 것으로 보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는 답변 등이 나왔다.

성희롱·성폭력 사건이 있더라도 가해자는 크게 타격을 받지 않고, 내부에서도 그런 일을 '쉬쉬'하는 분위기가 있어 신고하기가 쉽지 않다는 답변도 있었다. 고충처리기구 등에 신고해도 당사자가 누군지 은연중에 다 알게 돼 2차 피해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병원 내 성평등·성범죄 예방을 위해서는 '가해자에 대한 확실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보는 응답자가 전체의 87.3%로 가장 많았다. 이어 '사건 발생 시 외부 전문가 참여(82%)', '공정한 사건 처리를 위한 제도 내실화(74.3%)', 성평등 관련 규정·지침 교육(72.7%) 등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의료인의 성인지 감수성 강화를 위해 지속적이고 정기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응답자의 89.0%가 병원 내에서 성인지 감수성 관련 교육이 필요하다고 응답했고, 이중 42.3%가 '매우 필요하다'고 답했다. 다수의 응답자가 형식적이더라도 성인지 감수성 교육이 인식 개선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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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취재본부 / 백승원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