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불법 시설물" vs 유가족 측 "물러나지 않겠다"
경찰·서울시 관계자와 유가족 충돌…실신해 병원 이송
좁혀지지 않는 의견 평행선…추후 법정 다툼 가능성도
이태원 참사 유가족 및 관련 단체들이 서울광장에 기습 설치한 분향소를 두고 유가족 측과 서울시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서울시는 분향소를 '불법 시설물'로 보고 철거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는 반면, 유가족 측은 철거 시도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 물리적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7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과 서울시 측은 도심 분향소 설치 문제를 두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갈등의 핵심인 서울 중구 서울광장 분향소는 지난 4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협의회),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대책위)에 의해 설치됐다.
당초 유가족 측은 이태원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두고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인근 이태원공원 합동분향소에서 광화문까지 추모 행진할 계획이었지만, 행진 도중 서울광장에서 분향소를 기습 설치했다.
◆광화문 분향소 설치 요청 불허에 서울광장 기습 설치
유가족 측은 서울시가 광화문 광장 내 추모공간 설치를 불허했기 때문에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기습 설치했다는 입장이다.
윤복남 10·29 이태원 참사 대응 태스크포스(TF) 단장은 지난달 30일 서울시 측에 세종로공원에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를 설치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고 한다. 그는 "분향소 설치에 반대하는 인근 상인들의 불만이 누적됐고, 통행하는 시민이 적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울시 측은 도보에 방해되는 구조물을 시민공원에 설치하는 것은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시는 대신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지하 4층에 시민분향소를 설치할 것을 권유했다.
유가족 측은 세종로공원을 포함해 분향소 장소를 두고 논의를 이어가자는 입장이었지만, 서울시는 분향소 기습 설치에 대비해 종로경찰서에 세종로공원에 대한 시설물 보호 요청을 했다. 실제 서울경찰청은 지난 3일 세종로공원 인근에 기동대를 배치해 분향소 기습 설치에 대비했다.
◆서울시, 강제철거 예고…유가족 "계고장 보내도 지킬 것"
서울시는 서울광장 분향소를 '불법 시설물'로 규정하고, 계고 이후 행정대집행에 나서겠다면서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이동률 서울시 대변인은 전날 정례브리핑에서 "규정에 따라 불법 시설물에 대해 원칙적으로 대응한다. 원칙적으로 대응하는 것에 있어 법령과 판례에 따를 것"이라면서 "판례를 보면 2회 이상 계고를 한 후 행정대집행을 하게 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민들의 자유로운 사용을 보장해야 하는 광장에 불법적으로 고정 시설물을 허가 없이 설치하는 것은 관련 규정상 허용될 수 없다"면서 "이미 제안한 녹사평역 내 장소를 추모공간으로 제안 드린다"고 말했다.
협의회 측에 따르면 서울시는 분향소 설치 장소와 관련해 녹사평역 지하 4층이 아니면 협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가족 측에 통보했다.
유가족 측은 서울시의 강제철거 예고에 물러나지 않겠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정민 협의회 부대표는 전날 분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살아있는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지만, 죽은 아이들은 여기서 끝까지 지킬 것"이라면서 "여기서 우리 아이들이 나가면 우리도 죽은 목숨으로 같이 나갈 것이다. 계고장이 10장, 100장, 수천장을 보내도 우린 여기를 끝까지 지킬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종철 협의회 대표는 서울광장에 위패와 영정이 있는 분향소를 차려달라고 정부와 서울시에 요구했다. 그는 "지난해 11월2일 서울광장에 합동분향소를 차린 것처럼 (차려달라). 그땐 영정과 위패가 없었지만 지금은 영정과 위패가 있다"고 전했다.
◆갈등 고조되며 물리적 충돌 가능성…설치 과정서도 병원 이송
서울광장 분향소 설치를 두고 양측의 입장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물리적 충돌 위험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미 지난 4일 분향소를 기습 설치하던 유가족 측과 이를 막으려던 경찰 및 서울시 관계자가 충돌해 유가족 한 명이 실신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전날에는 유가족 측이 분향소에 전기난로를 반입하다 저지하는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유가족 측은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사과를 받기 위해 서울시청으로 진입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하면서 故최민석씨, 故박가영, 故정주희양의 어머니들이 뇌진탕 및 실신으로 병원에 이송됐다.
이들은 크게 다치지 않아 전날 퇴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좁혀지지 않는 의견 차…법정 다툼 가능성도
양측의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만큼 법원으로 공이 넘어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전날 유가족 측은 법정 다툼을 전망하기도 했다. 이창민 민변 변호사(10·29 이태원 참사 대응TF 공동간사)는 "서울시는 몇 차례 계고하고 철거를 대집행하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많은 시민이 있기 때문에 법원 판결 없이 퇴거할 수 없다"며 "(분향소 설치는) 관혼상제에 해당하기 때문에 며칠 만에 행정 대집행을 통해 철거한다는 것은 전례와 판례가 없다"고 주장했다.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제15조에 따르면 관혼상제 및 국경행사에 관련한 집회는 옥외집회 및 시위의 신고 등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반면 서울시는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해당 조례에 따르면 시장은 광장의 무단점유 등에 대해 시설물의 철거를 명하거나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행정대집행법에 따라 시설물을 철거하고 그 비용을 징수할 수 있다.
이 변호사는 "쟁점은 분향소가 공익적 목적에 벗어나는지,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분향소가 관혼상제에 해당하는지, 퇴거 명령 없이 시설물만 철거를 감행할 것인지 등인데, 법원의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라면서 "분향소를 유가족 측이 지키고 있는 한 법원의 퇴거명령 없이 강제 철거에 나서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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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임정기 서울본부장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