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보험사, 배상 후 책임보험사에 구상 청구
法 "책임한도 손해보다 적다면 회사청구 후순"
화재보험사가 계약자에게 지급한 손해보상금을 책임보험사에 청구하기 위해서는 피해를 본 당사자들이 요구한 직접청구권 행사가 선행돼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조재연)는 22일 화재보험사인 A사가 화재 가해 기업 측이 계약을 맺은 책임보험사 B·C사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사건은 2018년 인천 서구 일대 한 화학회사에서 화재가 발생하며 시작됐다. 이 회사는 사업 중 화재가 발생할 것에 대비해 제3자에게 손해를 배상하는 보상한도 3억원의 화재대물배상 책임보험계약을 B·C사와 체결했다.
B·C사는 이 화재의 다른 피해자들과 별도 손해보험계약을 체결했는데, 이에 따라 B사는 해당 화재 피해자에게 각각 16억5000여만원을, C사는 합계 3억1000만원 상당의 보험금을 지급했다. 이는 당초 사건을 일으킨 회사가 B·C사와 책임보험 한도로 정했던 3억을 상회하는 금액이다.
문제는 화재 피해자들도 A사와 손해보험계약을 맺었다는 점이다.
이 화재로 A사는 계약을 맺은 피해자 일부에게 1억3500만원 상당의 보험금을 지급하고 B·C사를 상대로 구상금 소송을 냈다. 자신들이 지급한 보험금을 B·C사가 보전해야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B·C사는 자신들의 보험금 지급 의무는 소멸됐다고 주장했다.
민법 제507조는 채권과 채무가 동일한 주체에 귀속한 때 채권이 소멸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B·C사는 자신들이 화재를 일으킨 회사와 책임보험계약을 맺었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 일부와도 손해보험계약을 맺어 책임보험금에 대한 직접청구권을 취득했다고 반박했다. 양측과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동일인에게 채권·채무가 귀속된 경우에 해당하고 이에 따라 지급 의무가 소멸됐다는 주장이다.
1심은 A사의 손을 들어줬다. B·C사가 피해자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해 손해배상 채권을 취득했다고 해도 A사에 대한 보험금 지급 의무는 별개라고 본 것이다. B·C사는 1심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2심 역시 항소를 기각하고 1심을 유지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뒤집고 사건을 2심을 맡았던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이 사건의 쟁점을 책임보험 한도가 실제 피해금액보다 적을 경우 피해자의 직접청구권과 보험금 지급으로 직접청구권을 취득한 화재보험사의 권리가 상충되는 경우로 해석했다.
B·C사가 맺은 3억원이라는 책임보험 한도액이 다른 피해자들의 손해 합계액보다 적은 이 사건의 경우 피해자들이 직접 책임보험자에 대해 남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지만, 권한을 넘겨 받은 보험사의 경우 전체 피해자들에 대한 보험금 지급이 이뤄진 다음, 또 한도가 남은 경우에 한해 이를 지급받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대법 관계자는 "책임보험 한도액이 다수 피해자의 손해 합계액에 미치지 못해 피해자의 직접청구권과 화재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한 후 보험자대위로 취득한 직접청구권이 경합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피해자의 직접청구권이 우선한다는 점을 최초로 명시적으로 설시했다"고 판결의 의의를 전했다.
다만 대법은 B·C사 측이 펼친 채권과 채무가 동일해 채권이 소멸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은 "이 사건 청구의 정당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직접청구권을 행사한 피해자들의 손해액과 원고와 피고가 직접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를 심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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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검찰 / 김 훈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