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옷 펼쳐 일어날 것"…호남의병 김도숙은 뛰어난 서화가였다

나주문화원이 나주 향토사를 넘어 대한민국 근대사 연구에 소중히 쓰일 두 권의 책을 발간했다.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뛰어난 서화 작품을 남긴 나주 출신 호남의병 가석(可石) 김도숙(1872~1944)의 숨겨진 예술 활동을 조명한 '가석 김도숙 평전'과 나주 근대사를 9개 주제로 담은 '남파고택 소장자료 조사보고서'가 그것이다.

◇독립운동가이자 문인화가였던 '가석 김도숙 평전'



'가석 김도숙 평전'은 박종석 호남회화사연구소장과 최열 미술평론가, 홍영기 순천대 명예교수의 노력으로 완성됐다.

1872년 나주 봉황면 운곡리에서 태어난 김도숙은 심남일(沈南一) 의병장의 도통장(都統將)으로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1909년 5월 체포돼 7년간의 옥살이를 한 후에도 1918년 다시 의병을 일으켜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항쟁한 애국지사로 광복을 앞둔 1944년 2월에 별세했다.

사후 독립운동을 펼친 사실이 확인돼 1986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기도 했다.

김도숙의 의병 활동은 그가 남긴 남호찬록(南湖纂錄)과 거의일기(擧義日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07년 가석이 나주 남평읍에서 의병을 모집할 때 쓴 격문을 보면 그의 애국심을 느낄 수 있다.

당시 그는 "강물의 외침을 듣고 갑옷을 펼쳐 일어날 것을 생각하였다. 산하를 보고 의병을 만들 것을 원했노라. 사람이 아니면 누가 즐거이 죽는 의병이 되지 않으리오. 만약에 한 힘을 보태 주신다면 결단코 백 세에 향기로운 이름 남기리"로 맺는 애국심이 들끓는 유명한 격문을 남겼다.

그는 1938년 전후로 일제의 감시를 피해 유랑을 하던 중 잠시 영광에 은거하면서 한국화(인문화) 창작에 전념하면서 의병 화가라는 아주 특별한 삶을 살았던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당시 그가 남긴 노안도(蘆雁圖) 매화도(梅花圖) 묵죽도(墨竹圖) 노송도(老松圖) 등의 작품은 대가의 솜씨를 능가하는 수준 높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에 연구논문을 실은 최열 미술평론가는 "김도숙은 작가로 알려진 적도 없고 또 해방 뒤에 간행된 여러 종류의 미술사전과 애국지사 유묵첩에서도 소개된 적이 없는 인물로 한국 미술사의 획기적인 발견"이라고 평했다.


◇'남파고택 소장자료 조사보고서'…나주 근대사 9개 주제로 다뤄

이 책자는 전남 시·군 역사 자원 발굴사업 지원을 받아 발간한 결과물이다.



2009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남파고택(南坡古宅·나주시 남내동)에서 소장해 온 각종 유물 중에서 문서, 도서, 사진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해 정리한 자료집이다.

1900년대 초부터 1970년대까지 남파고택의 주인이었던 박정업(朴正業)과 박준삼(朴準三)씨가 기록하고 소장했던 각종 문서 등을 후손인 박경중(朴炅重·전 나주문화원장)씨의 도움으로 1년여 조사 과정을 거쳐 간행했다.

나주문화원은 가족·경제·교육·문화·사진 등 9개 주제로 분류해 총 483건, 880점을 조사했다.

이 중 일기류, 사진류, 도서류 등의 내용은 당시의 사회생활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주 근대사의 공백을 메워줄 자료로서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일제강점기 금강산, 경주, 연변 모습 등을 담은 사진엽서와 광주고보, 서울 중앙고의 교사 건축 사진을 비롯해 나주 협동상회 문서와 한별고등공민학교 설립문서 등은 잘 알려지지 않는 것들로 대한민국 근대사 연구자들의 관심이 클 것으로 보인다.

윤여정 나주문화원장은 25일 "두 권의 책은 단순히 나주의 역사를 정리한 기록물에서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근대사의 귀중한 자료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의지를 가지고 조사와 간행 작업을 하게됐다"며 "앞으로도 근대사 자료 발굴과 연구에 집중해 나주 향토사 연구의 맥을 이어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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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나주 / 김재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