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한도 400만원인데 1인당 578만원 책정
서울시의회 의원들이 비회기 기간에 대거 해외 시찰을 떠난 가운데, 일부 상임위원회가 정해진 예산 범위를 넘긴 계획을 짜고 추가 비용을 자비로 충당하기로 해 의혹이 일고 있다.
서울시 예산과 조직 운용, 산업 경제 분야 전반을 살펴보는 서울시의회 기획경제위원회(위원장 이숙자)는 16일부터 오는 23일까지 6박8일 일정으로 캐나다 토론토와 몬트리올, 미국 워싱턴과 뉴욕을 방문한다.
기경위 소속 시의원 11명과 상임위 수석전문위원, 입법조사관 2명, 주무관 등 모두 15명이 출국한다.
이들은 대한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 여객기를 이용하고 일정 내내 전용 차량을 쓴다.
시찰 계획서상 소요 예산은 약 7402만원이다. 문제는 7402만원이 '서울시의회 국제교류 기본계획' 등 현행 법령과 조례 등에 규정된 상한인 6000만원보다 1400만원 이상 많다는 점이다.
시의원과 직원 1인당 시찰 예산 배정 한도는 400만원인데 이번 시찰 계획서상 시의원 1인당 소요 예산은 578만원이다. 직원 1인당 예산 역시 532만원으로 400만원을 훌쩍 넘겼다.
결국 시의원은 178만원씩, 직원은 132만원씩 자기 돈을 내고 시찰을 떠나는 셈이다.
178만원과 132만원은 시의원과 직원에게는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특히 서울시 공무원 신분인 시의회 소속 주무관에게 자비 부담을 시키는 것은 의아한 대목이다.
시의원은 한 달에 의정활동비와 월정수당으로 600여만원을 받지만 서울시 7급 주무관은 일반적으로 각종 수당을 합해도 월 200만원 안팎을 받는 실정이다. 해당 직원은 임기제라 봉급이 다른 7급보다 많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월급의 절반 가까이를 출장 다녀오는 데 써야 할 판이다.
이 문제는 지난달 19일 열린 서울시의회의원 공무국외활동 심사위원회 회의 중에도 다뤄졌다.
당시 "기본예산이 4400만원인데 소요예산이 7000만원 정도면 개인비용을 부담하고 가는 것이냐"는 질문에 기경위 수석전문위원은 "사비를 내고 가는 것이 맞다"며, "기획 경제와 관련된 나라가 세계의 중심인 미국인데 기본적으로 항공료가 비싸기 때문에 책정된 여비로는 갈 수가 없었다"고 답했다.
그러자 심사위원들은 우려를 드러냈다. "예산에 맞춰서 가야지 개인 돈까지 부담하고 가는 것은 외유성으로 오해할 수 있다", "외부에서 볼 때는 국민 세금에 자기 돈을 붙여 놀러가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순수한 공무국외활동이 변질될 수 있다" 등 비판을 내놨다.
자비를 내고 출장을 떠나는 것은 기경위뿐만이 아니다. 인도와 네팔을 방문하는 환경수자원위원회와 독일을 찾는 교통위원회 역시 1인당 비용 400만원 상한을 넘겨 시의원과 직원들의 자부담이 불가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자기 돈을 내면서까지 출장을 가야 하는 사태가 벌어진 가운데 일각에서는 과연 이들이 시찰 비용을 모두 자기가 부담한 게 맞느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만만찮은 자부담액에도 불구하고 이탈자 없이 시찰이 준비되는 과정에서 모종의 다른 조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민선 8기 하반기 서울시의회 의장 선거가 배후에 있는 것 아니냐는 시선까지 나온다.
서울시의회에는 의장 선거를 둘러싼 '흑역사'가 있다.
2008년 당시 김귀환 전 서울시의회 의장은 일명 '돈봉투 사건'으로 구속 기소됐다. 김 전 의장은 제7대 후반기 의장 선거를 앞두고 동료 의원 28명에게 3400여만원 상당 돈봉투를 뿌린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및 뇌물공여)로 구속돼 파문을 일으켰다. 결국 시의원 4명이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형을 선고 받고 의원직을 잃었다.
이 밖에 이번 해외 시찰에서는 시의원들이 피감기관을 데리고 함께 출장을 떠나는 악습 역시 되풀이됐다.
11일부터 17일까지 5박7일 간 독일로 떠난 문화체육관광위원회(위원장 이종환) 시찰단에는 서울문화재단 등 피감기관 직원들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그간 지방의회 의원들이 피감기관을 대동하고 해외 출장을 떠나 식사비용 전가, 현지 차량 제공 등 대접을 받으며 갑질을 한다는 비판이 수년째 제기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의회가 피감기관과 굳이 동행해야 했느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문체위 측은 전문성이 있는 피감기관과 함께 출장 일정을 소화하면 서울시 정책에 관한 공감대 형성이 원활해질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 역시 설득력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게다가 서울시의회 상임위원회는 6월 임시회 때 추가경정예산안 심사를 앞두고 있다. 피감기관 추경 예산 심사권을 갖고 있는 시의회 상임위원회가 해당 기관을 대동하고 해외 시찰에 나선 것을 놓고 시선이 곱지 않을 밖에 없는 것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일련의 사태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현행 규정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 세계적인 물가 상승 추세로 시찰 비용이 급증한 반면 해외 시찰 예산 한도는 1인당 400만원에 머물면서 시의원들이 정작 필요한 해외 현장을 갈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결국 시찰 비용이 부족해진 지방의회 상임위원회들이 자비 부담이라는 명목으로 석연치 않게 비용 처리를 하거나 아니면 피감기관에 각종 비용을 결제하게 하는 갑질을 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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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이병식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