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만 판례 바꾼 대법…"혼인무효와 이혼 다르다"

대법 "법적 효과 차원에서 이혼과 달라"
"이혼에도 남는 법적 관계들 해소 가능"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혼 후에도 혼인무효 소송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해 40년 만에 기존 대법원 판례를 변경했다.



부부가 이혼을 하더라도 법적 관계들이 남아 있는데, 혼인무효가 되면 이혼 전 남아있는 과거 법적 관계가 사라지게 되면서 다양한 법적 분쟁들을 해소할 수 있다는 취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3일 이혼한 부부에게 혼인무효 처분을 인정하지 않는 혼인무효 소송 상고심에서 기존 대법원 판례대로 판단한 원심 판결을 파기·자판하고 사건을 1심 서울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지난 1984년 대법원은 부부가 이미 이혼했다면 혼인무효 확인을 구할 이익이 없다고 판시해, 이혼을 통해 혼인관계가 해소됐기 때문에 혼인무효 확인을 구할 실익이 없다고 정했다. 이 같은 대법원 판례로 인해 혼인무효 소송은 본안 판단을 받을 기회 없이 각하 판결을 받는 경우가 잦았다.

실제로 혼인무효 소송의 청구인도 '혼인 의사를 결정할 수 없는 극도의 혼란과 불안, 강박 상태에서 실질적 합의 없이 혼인신고를 했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과 2심에서 재판부가 모두 대법원 판례를 유지하면서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청구인은 재판 과정에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미혼모가족을 위한 다양한 지원 사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혼인 기록이 남아 현재 법률관계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혼을 했지만 혼인무효 소송으로 얻는 법적 이익이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전원 일치 의견으로 혼인관계가 이미 해소된 이후라고 하더라도 혼인무효 확인을 구할 이익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법적 효과 차원에서 혼인무효와 이혼은 다르다고 강조했다.

친족 사이에 재산에 관련된 범죄는 형을 면제하거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형법상 규정인 '친족상도례'가 대표적이다. 부부가 이혼을 하더라도 형법상 친족상도례가 적용돼 처벌하지 않지만 혼인무효가 되면 처벌할 수 있게 된다.

또 혼인무효 시 민법상 인척이거나 인척이었던 사람과의 혼인금지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아울러 가사와 관련된 빚에 대해서 이혼 이후에도 연대책임을 물을 수 있는데, 혼인무효가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 외에도 대법원은 무효인 혼인 전력이 잘못 기재된 가족관계등록부의 정정 요구를 위해서 혼인무효 소송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다만, 법조계는 대법원의 판례 변경으로 실제 무효 판결이 급격하게 늘어나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대법원은 이혼과 혼인무효의 법적 효과가 다르기 때문에 혼인무효 확인을 구할 법적 이익이 있다고 판시했지만 혼인무효 사유를 폭넓게 인정한 것은 아니다.

현행 민법상에서 규정하고 있는 혼인무효 사유는 당사자들 간 결혼에 대한 합의가 없는 경우, 근친혼인 경우 등 매우 제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단순히 가족관계등록부 상에 남아 있는 이혼 기록을 지우기 위해 혼인무효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승소 판결까지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대법원 관계자는 "무효인 혼인 전력이 잘못 기재된 가족관계등록부 등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아 온 당사자의 실질적인 권리구제가 가능하게 됐다"며 "국민의 법률생활과 관련된 분쟁을 실질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당사자의 권리구제방법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KG뉴스코리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법원.검찰 / 김 훈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