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로 번진 성폭행 사건 사과합니다" 고개 숙인 밀양

밀양시, 시의회·시민단체 80여곳과 함께 사과문 발표
"사회적 책임 다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겠다"
피해자 회복 지원 자발적 성금 모금, 종교단체도 치유 나서

경남 밀양시는 25일 2004년 발생한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에 대해 모든 국민께 깊은 사과의 뜻을 전하며 머리를 숙였다.

밀양시는 이날 오후 2시 시청 대강당에서 안병구 시장을 비롯한 시의회와 80여 개 시민단체가 참석한 가운데 안 시장이 대표로 사과문을 낭독하며 피해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상처받은 모든 국민에게 깊은 사과의 뜻을 전하며 깊이 머리를 숙였다.

이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자신의 임기가 아닌 수십 년 전 사건에 대해 사과하는 이례적인 경우다.



이날 발표한 공동 사과문은 최근 온라인에서 20년 전 사건의 가해자들의 신상이 공개돼 사적 제재 논란이 일고, 피해자의 인권이 또다시 위협받는 상황에서 밀양시는 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안 시장은 지역사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시민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안 시장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상처받은 모든 이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를 전하며, 어른들의 잘못과 지역사회의 부족한 반성과 사과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다.

그는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올바르게 이끌어야 하는 어른들의 잘못도 크고, 그동안 제대로 된 반성과 사과를 하지 못한 지역사회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밝혔다.

피해자 지원과 향후 대책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인권이 존중받고 보호받으며 더 이상 고통받지 않기를 바란다"며 "피해자 회복 지원을 위한 자발적 성금 모금과 지역사회와의 협력을 통한 안전하고 건강한 도시 만들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회적 약자 존중·배려 및 생활 속 불안 요소 해소를 주된 시정 방향으로 삼아, 지역사회가 함께 반성하고 자정 노력을 기울여 외부에서도 느낄 만큼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낸다는 방침이다.

각 기관과 단체, 종교계는 이 사건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자발적인 지원 활동을 계획하고 있으며, 지역 내 종교단체들은 피해자의 치유를 위한 합동 예불과 기도회를 준비 중이다.

유림단체들은 학생들에게 올바른 윤리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교육을 계획하고 있으며, 밀양시 성폭력·가정폭력 통합상담소는 피해자 회복 지원을 위한 성금 모금을 진행해 한국성폭력상담소를 통해 피해자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안병구 시장은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사과의 뜻을 전하며, 지역사회의 반성을 통해 안전하고 건강한 도시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시민과 국민 여러분께서도 피해자의 조속한 일상 회복과 밀양시의 자정 노력에 관심을 가지고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밀양시는 성폭력 예방과 피해자 지원을 위한 정책을 오랫동안 추진해왔으며, 맞춤형 예방 교육과 성폭력 예방 캠페인, 피해자 일시 보호 지원시설 운영 등을 통해 노력해왔다.

또 밀양시는 성범죄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낮은 도시 중 하나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 생활 속 불안 요소 해소를 시정 방향으로 삼고 있다.

실제 시는 2022년 경찰청 통계 기준 인구 10만 명당 성범죄 비율이 전국 85개 시 가운데 74번째로 최하위권이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모두 70위권 바깥쪽에 머물러 성범죄가 가장 적은 도시에 속한다.

밀양 사건은 2004년 경남 밀양에서 44명의 남학생이 여자 중학생 1명을 1년간 지속적으로 집단 성폭행한 사건이다.

당시 가해자들은 1986~1988년생 고등학생들로 당시 울산지검은 가해자 중 10명(구속 7명, 불구속 3명)을 기소했다. 20명은 소년원으로 보내졌다. 나머지 가해자는 피해자와 합의했거나 고소장에 포함되지 않아 ‘공소권 없음’ 결정이 났다.


아래는 밀양시, 밀양시의회, 밀양시 시민단체 합동 사과문 전문.

[ 존경하는 밀양시민 여러분, 그리고 국민 여러분 오늘 우리는 매우 무거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20년 전, 밀양에서 발생한 여중생 성폭행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깊은 충격과 상처를 남겼습니다. 아직 그 상처는 제대로 아물지 못하고 많은 분의 공분과 슬픔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이루 말하지 못할 큰 고통을 겪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상처받은 모든 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모두의 잘못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올바르게 이끌어야 했음에도 어른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잘못을 반성하고 더 나은 지역사회를 만들 책임이 있음에도 나와 우리 가족, 내 친구는 무관하다는 이유로 이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와 반성도 하지 못했습니다.

피해 학생과 그 가족이 겪었을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우리 모두의 불찰입니다. 무엇보다도 피해자의 인권이 존중받고 보호받으며, 더 이상 고통받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앞으로 밀양시는 지역사회와 손잡고, 안전한 생활공간을 조성하며 건강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습니다. 도시의 시스템을 재점검하고 범죄예방과 안전 정책 추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밀양시 성폭력·가정폭력 상담소에서는 피해자 회복 지원을 위한 자발적 성금 모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크나큰 아픔을 딛고 엄정한 법질서 확립과 성폭력 없는 건강한 도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모든 분야에서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2024. 6. 25. 밀양시, 밀양시의회, 밀양시 시민단체 일동 ]

<저작권자 ⓒ KG뉴스코리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부산.경남본부장 / 최갑룡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