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은 동색'이라더니"…대학들, 의학교육평가원 상대 전면전 나서나

의대 총장협 회장, 뉴시스에 "학생 복귀가 먼저여야"
"복귀 전 변회계획서 제출은 거부할 것" 보이콧 시사
의대생 문제로 지친 대학들, 최근 들어 '강경론' 확산
의평원 태도에 일각서 의구심…"초록은 동색 아니냐"
평가 거부 시 '불인증' 처분 가능…의평원, 신중 기류

5개월 넘게 의과대학 정원 증원에 반대하며 돌아오지 않는 학생들을 인내하던 대학들이 엄격한 재평가 잣대를 들이댄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을 향해 분통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의대 운영대학 총장 협의체 회장이 의대생 복귀를 조건으로 '평가 보이콧' 가능성을 시사하고 나서면서 전면전으로 확산될지 주목된다. 평가를 맡게 될 의대 교수들도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의대 총장협 회장 "학생 복귀 않는데 무슨 재평가"



31일 의대를 운영하는 대학 총장들의 대표 격인 홍원화 '의과대학 선진화를 위한 총장협의회(의총협)' 회장(경북대 총장)은 뉴시스와 통화에서 의평원의 의학교육 평가인증 주요변화계획서 제출은 수업을 거부 중인 의대생들이 복귀한 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총장은 의평원 평가 대상이 된 다른 29개교 총장들에게도 동참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의평원이 홍 총장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주요변화계획서 제출을 거부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의평원의 이번 평가는 인증을 이미 취득한 의대도 정원이 10% 이상 늘어나는 등 변화가 있다면 교육 질을 다시 점검 받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평가 결과 인증이 바뀔 수도 있고, '불인증' 판정으로 바뀌면 관계법령에 따라 신입생 모집이 정지된다.

그러나 대학가에서는 의평원이 정말 교육 질을 따져 보기 위해 이번 평가를 준비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나오고 있다. 대정부 투쟁에 나선 의료계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인증 평가를 악용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사전 예고 없이 당초 15개였던 평가 지표를 51개로 늘렸고, 주요변화계획서 제출 시기도 올해 11월말로 정해 9월 발표될 정부의 지원책을 보고서에 반영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의대생 유급 방지책 질의하자 "안 된다"는 의평원

교육계와 일부 대학 관계자 중엔 의평원이 내세운 평가 잣대가 의대 증원에 영향을 받는 교육 질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지 의문을 드러내는 시각도 나온다.

의평원이 제시한 주요변화계획 평가 지표를 보면, '의과대학은 사명에 근거하여 졸업 성과를 규정', '학생 활동과 학생의 자치활동을 장려' 등 학생 증원에 따른 직접적인 변화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내용도 있다.


졸지에 똑같은 평가를 두 번 받아야 하는 대학도 있다. 의평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올해 기존 인증이 만료돼 방문평가를 받는 의대 중 4곳은 증원에 따른 재평가도 동시에 받아야 한다. 인증 유지를 위한 중간평가를 동시에 받는 의대 11곳을 합하면 15곳에 이른다.

대학들이 불만을 갖는 내용은 또 있다. 경북대는 의평원에 본과 3·4학년 임상실습 시수를 '주당 40시간 47주'(1880시간)로 바꾸면, 의평원의 인증 기준인 '주당 36시간 52주'(1872시간)를 채울 수 있는지 질의했다.

그러나 전날 설명회에 나선 윤태영 의학교육인증단장(경희대 의대 교수)은 "현재로서는 오직 기준을 유지하는 게 타당하다"고 선을 그었다. 경북대는 "의평원 공식 입장을 받지 못했다"며 입장을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한 대학 관계자는 "'초록은 동색'이라는 게 확실히 이번에 나온 것"이라고 했다. 의대생들이 수업 거부를 하고 있어 추후 보충수업이라고 진행하겠다는 입장이었는데, 의평원이 의료계 편을 들어 주기 위해 이를 무리하게 거부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다.

◆교육 질 악화 공감하더라도…의정갈등 인내심 한계

물론 증원 규모가 대학별로 많게는 현재 정원의 4배(충북대)에 이르는 의대가 있는 만큼 교육 질 악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자연스럽고, 정부가 합당한 지원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의견도 일리 있다는 의견도 많다.

그럼에도 대학에서 의평원에 대한 공개적 불만이 표출되는 배경엔 장기화된 의대생 미복귀 문제가 있다.

대학 관계자들은 지난 5개월 동안 돌아오지 않는 학생들의 집단 유급을 막기 위해 학생들을 만나 상담하고 학사 제도를 조정해 가면서 피로감을 호소해 왔다.

그러나 의대생 내 강경파들이 복귀하는 학생들의 실명을 텔레그램에 공개하면서 '조리 돌림'을 시도하고, 한양대 등 일부 대학에서는 휴학원을 내지 않은 학생의 명단을 공개하면서 제출을 강요한 사례도 나왔다.

그동안 의대생들도 학생인 만큼 훗날 1년 간의 시간을 허비한 피해를 떠안지 않도록 교육자로서 인내하며 설득해 왔다고 말하는 총장, 처장들도 다수지만 최근 들어 "원칙대로 하자"는 의견도 나오는 상황이다.


◆평가 거부 시 '불인증' 가능하지만…과연 강행할까

이런 상황에서 의평원이 증원된 의대에 대한 평가를 마쳐서 설령 '인증 유지' 판정을 내놓더라도 의대생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홍 회장은 "(의평원이) 자신 있다면 학생들을 다 돌아오게 한 뒤 원칙대로, 보고 싶은 대로 의대 교육의 질을 보는 게 맞는다"며 "내년 3월에 학생들이 돌아올 수 있다고 의평원은 보장할 수 있는가"라고 했다.

그간 의정갈등의 가장 빠르고 시급한 타개책은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 포기라고 주장해 왔던 의대 교수들의 여론 지형에 변화가 있을지도 주목된다.

한 대학 관계자는 "의학교육 평가인증 주요변화계획서는 대학 본부가 쓰는 게 아니라 교수들이 쓴다"며 "평가도 교수들이 한다. 의대 교수들이 와서 의대 교수들을 목 조르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평원은 평가를 거부하는 대학에 인증을 취소할 근거를 갖고 있다. 의평원 '의학교육인증단 규정' 제10조는 '불인증은 대학이 정당한 사유 없이 평가인증에 응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의대 교수들이 스스로 다른 의대의 문을 닫게 되는 꼴이 되는 터라 의평원도 부담스러운 분위기다. 거기다 경북대 뿐만 아니라 다수 대학이 평가를 일제히 거부하고 나서면 현실적으로 봤을 때 전혀 다른 수준의 문제가 된다.

안덕선 의평원장은 전날 주요변화계획 평가 설명회에서 "지속적으로 대학 관계자나 정부 관계자나 다 늘어난 학생에 맞춰 인원 확충, 교수의 확충, 시설 확충, 재정 확충을 이야기하고 있다"며 "이게 이뤄지면 주요변화 평가에서 불인증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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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 김재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