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사형수' 정동년 5·18재단 이사장 빈소 이틀째 조문 행렬

"못다 한 일 놓고 간 원한에 하늘도 슬퍼하는 듯"
정치권 애도 잇따라…전·현직 대통령 조화 나란히
함께 진상규명 투쟁한 5월 인사들도 "영면하소서"

5·18민주화운동 직전 내란 수괴 누명을 뒤집어쓴 '오월 사형수'로서 항쟁 진상 규명 등에 헌신한 고(故)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에 대한 조문 행렬이 이틀째 이어졌다.

고 정 이사장의 장례 둘째 날인 30일 오전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광주 동구 금호장례식장에는 조문객 발길이 하루 종일 잇따랐다.



조문객들은 일평생 5·18 항쟁의 진상 규명과 신군부 책임자 처벌을 위해 힘쓴 고 정 이사장의 뜻을 되새겼다.

빈소에 들어선 조문객들은 영정을 한참 바라보거나 엄숙한 표정으로 헌화·분향했다. 저마다 고인과의 인연 등을 회고하며 유족을 다독이기도 했다.

5·18 유공자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공로자회) 전·현직 회장들도 조문 행렬에 동참, 고 정 이사장의 넋을 기렸다.

정춘식 전 5·18유족회장은 "조문차 집에서 나오자마자 내리는 비를 보며 눈물이 핑 돌았다. 못다 한 일을 놓고 가는 원한이 얼마나 깊으면 하늘도 이렇게 슬퍼하나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고인은 학살 책임 추궁, 유공자 단체 구성과 화합·복지 등 많은 일을 했지만 가장 큰 숙원은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이었을 것이다"며 "고인이 해야한다고 생각한 일들은 남아있는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 할테니 이제는 편안히 쉬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정 이사장의 뜻을 받들어 함께 활동한 5월 인사들도 고인의 영면을 빌었다.

조영대 신부는 "5·18의 진상규명을 위해 큰일을 하신 어르신이 황망하게 떠나셔 너무나 안타깝다. 누가 정 이사장의 뒤를 이어 훌륭한 어른의 역할을 해주실지 모를 정도로 떠나신 자리가 크다"며 "앞으로도 남은 후대가 어르신의 유지를 받들어 광주 정신 계승에 힘쓰겠다"고 명복을 빌었다.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도 "정 이사장은 생전 5·18의 당사자이자 살아남으신 분으로서 역사적 책무를 다하신 분이었다"며 "소명을 다하고 떠나신 분들의 유지를 후대가 받들어 오월 정신과 진상규명에 최대한 힘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송선태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위원장은 "항상 5·18 가족과 투쟁의 힘을 한 곳으로 모으게 하신 지도자가 우리 곁을 꺼났다"며 "조작된 내란 수괴와 고문을 못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길 시도하셨던 분께서 우리에게 남긴 뜻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상규명과 학살자의 처벌이라는 뜻을 받들기 위해 살아남은 우리는 부끄러움으로 모든 역량을 다하겠다"며 "부디 영면하시길 바란다"고 고개를 떨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들도 조문 행렬에 동참했다.

정인기 민변 광주지부장은 "오월 항쟁으로 옥고를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실 때까지 5·18기념재단 이사장으로서 소임을 다하셨다. 마지막 가시는 길 마음 편할 수 있도록 남아있는 사람들이 제 몫을 해야 한다고 다짐해본다"고 했다.


정치권의 애도 물결도 잇따랐다.

빈소 양 옆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 명의의 조화가 나란히 놓였다.

문 전 대통령은 주변 인사를 통해 보낸 조전(弔電)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가치를 널리 계승 발전시키는데 앞장서신 고인의 삶에 깊은 존경을 표하며, 이명자 전 오월어머니집 관장님을 비롯한 유가족 여러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아침 일찍 빈소를 찾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안타깝다. 사법부의 무리한 판결로 고초를 겪으셨고 당시 광주시민들이 겪었던 일들을 한 몸으로 담아낸 상징적인 분이라고 생각해 애도하게 됐다"며 "우리 당이 앞으로 정 전 이사장이 못다 이루신 것들 다 이룰 수 있도록 그 길을 걸어나가겠다"고 밝혔다.

오후 4시께 빈소를 찾은 김민기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은 "이사장님의 숭고한 뜻을 잊지 않고 따르겠다. 5·18정신을 계승해 민주주의 발전을 이룩하겠다.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고 짧은 추모사를 남겼다.

김상희 국회부의장, 이종섭 국방부 장관,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등도 조화를 보내 정 전 이사장의 별세에 애도를 표했다.

고 정 이사장은 지난 29일 오전 10시 광주 남구 자택 인근 모처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1964년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을 맡았던 그는 1965년 한일굴욕외교 반대 투쟁을 이끌다 구속·제적당했다. 이후 사회 생활을 하다 1980년 37세 만학도로 복학했으나, 5·17 비상계엄 확대 조치에 따른 예비 검속으로 옥고를 치렀다.


전두환 신군부가 꾸며낸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에 휘말려 모진 고문을 당한 뒤 내란수괴 혐의를 뒤집어썼다. 군사 재판에서 이른바 '광주사태 주동자'로 분류, 사형을 선고받았다.

1982년 12월에서야 성탄절 특별사면조치로 석방됐으며, 5·18 진실 규명을 비롯한 사회 운동에 헌신했다.

1988년 국회 광주 청문회에서는 신군부의 고문 수사가 사실이라고 폭로했고, 1994년에는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35명을 내란 목적 살인 등 혐의로 고소해 처벌을 이끌어냈다. 1995년 검찰의 5·18 학살 책임자 불기소 처분에는 수사 결과를 검증하며 투쟁을 벌였다.

고 정 이사장은 광주민중항쟁연합 상임의장,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공동의장, 5·18민중항쟁 30주년 기념행사위원회 상임행사위원장, 이철규 열사 사인규명대책위 공동의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해에는 제14대 5·18기념재단 이사장으로 선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활동에 힘썼다.

장례는 '민주국민장' 형식으로 3일 간 치러진다. 영결식은 오는 31일 오전 10시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에서 열린다.

노제는 5·18기념재단과 고인의 모교인 전남대학교에서 펼쳐진다. 유해는 국립 5·18민주묘지에 안장된다.

<저작권자 ⓒ KG뉴스코리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주.나주 / 김재성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