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차 의료현안협의체…의협 대표단 교체 후 첫 만남
복지부도 맞대응 "동떨어진 인식…국민 목소리 답하라"
"언제까지 현실 외면하고 딴 세상 얘기하듯 할 것인가"
의과대학 정원 확대 문제를 놓고 보건복지부와의 소통 채널을 전면 개편한 대한의사협회가 일방적인 정책 추진 땐 강경 투쟁을 불사하겠다며 한층 날선 입장을 내놨다.
이에 복지부도 의협이 동떨어진 인식을 갖고 있으며 국민의 준엄한 명령에 답하라며 강경한 반응을 보였다.
복지부와 의협은 1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티타워에서 제17차 의료현안협의회를 개최했다.
올해 열린 의료현안협의체는 그간 16차례 회의를 통해 지역·필수의료를 살릴 정책 패키지 중 하나로 의대 정원 확대 문제를 논의하자는 데에 합의했다.
그런데 이 합의 이후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의협 내부에서 반발이 나와 그간의 대표단이 물러나며 새 대표단이 구성됐고, 이날 회의는 의협 측 새 대표단 구성 이후 첫 회의다.
의협 측 새 대표단장을 맡은 양동호 광주광역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은 모두발언을 통해 "정부는 과학적,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의대 정원 정책을 준비하겠다고 확언했지만 지금 실시하고 있는 수요조사는 전혀 과학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요조사를 진행하는 대학과 부속병원, 지역 정치인과 지자체 모두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현실을 왜곡하고 각자 목적에 변질될 것"이라며 "고양이에게 얼마나 많은 생선이 필요하냐고 묻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이어 양 의장은 "만약 정부가 의정 합의를 위반하고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결정하면 우리 의료계도 2020년 이상의 강경 투쟁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음을 미리 알려드린다"고 했다.
앞서 코로나19 대유행이 한창이던 2020년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자 전공의 파업 등 의료계에서 의료 파업에 나선 바 있다.
또 양 의장은 "무너지는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선 의대 정원 확대와 같은 불확실, 지엽적 정책으로는 결코 안 된다"며 "전 세계 어느 국가도 단순 비교만으로 의사 수가 부족한지, 충분한지 판단하는 나라는 없다"고 했다.
양 의장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당일 예약 외래 환자 대기 시간은 21분으로 미국 24.1분보다 짧고 국민 1인당 연간 의료 진료 횟수는 14.7회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5.9회보다 많다. 적정한 진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초과 사망 지표는 우리나라가 52명으로 OECD 평균 1499명의 29분의1 수준이다. 또 인구 1000명당 의사 1명이 증가할 때마다 의료비가 22% 증가한다.
양 의장은 "지역·필수의료가 무너지는 원인은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 때문"이라며 "해마다 물가 상승률이 5% 이상인데 의료비 인상률은 올해 1.6%였고 일방적으로 수요자 의견만 반영해 해마다 인상률이 2~3%를 넘지 않는다"며, "현재의 수가는 원가의 70% 정도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이런데다가 의료 사고 판결을 보면 천문학적 액수의 판결은 물론 형사 처벌도 세계 1위를 차지한다"고 했다.
양 의장은 "정부도 이런 사실을 모르지 않을텐데, 더 이상 진실을 외면하지 말라"며 "숲에 불이 붙었는데 한가로이 나무만 심자고 하지 말고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 이제라도 수가를 조정하고 의료 사고 특례법을 만들면 필수의료는 당연히 정상화 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정경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안타깝게도 그간 의협은 국민 기대와 의료 현장 요구와 동떨어진 인식을 해왔다"며 "의학교육 현장과 지역의 요구를 포퓰리즘으로 치부하면 안 된다" 지적했다. 복지부는 의협 외에 병원계, 지방의료원, 대한전공의협의회, 전문학회 등 다른 의료계 단체와 소비자단체, 환자단체 등와 간담회를 진행 중이다.
또 정 정책관은 "전 세계 국가와 학계가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OECD 통계를 외면하고 과학적, 학술적으로 연구한 다양한 국책연구 기관의 의사 인력 추계 연구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의대 정원을 늘리면 의료비가 상승할 것이라고 했는데,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현상을 해결할 수 있다면 올라가는 의료비에 정부가 지출을 하는 건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 정책관은 "의대 정원 확대 문제는 여야 구분없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고 대다수의 언론과 국민이 지지하고 있다"며 "언제까지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딴 세상 얘기하듯 할 것인지 묻고 싶다. 의사 인력 확충을 막는다면 직역 이기주의라는 국민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 정책관은 "최고의 실력을 가진 우리나라 의료진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환경을 마련하겠다"며, "정부와 의료계가 합심해 우리나라 의료 체계 비전을 보여드려야 할 날이 얼마 안 남았다. 대표단도 정부와 열린 마음으로 지역과 필수의료를 살리라는 국민이 준엄한 명령에 답하길 바란다. 전향적인 변화와 협력의 모습을 보여주길 강력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 양 측은 과학적·객관적 데이터에 입각한 논의와 실질적인 필수·지역의료 유입방안이 선행되면 의대정원 논의를 할 수 있다고 합의했다. 또한 의협은 필수·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고위험·고난도 의료행위에 대한 수가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구체적 방안 중 하나로 다음 회의에서 수가 정책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현재 정부가 진행 중인 의대 정원 확대 수요조사에 대한 내용은 이날 회의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되진 않았다.
복지부 관계자는 "새로 협상단이 꾸려지다보니 서로 뜻을 맞추기까지 격렬한 토론이 진행돼 오늘(15일)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었다"고 말했다.
의협 관계자는 "지역·필수의료를 살리려면 몇가지 풀어야 할 게 있고 그런 부분을 쭉 정의했다"며 "의대 정원으로 지금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정부도 다 안다고 생각한다. 좀 더 해결 중심 방안으로 가자고 강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한편 제18차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는 오는 22일 오후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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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차장 / 곽상현 기자 다른기사보기